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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4-20 10:20
[회원들의 글] 어버이주석님 은덕속에 살아온 인생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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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일 남(재중조선인총련합회 할빈지구협회 회장)

 

내 나이 75살, 이제야 철이 드는가 봅니다.

머리가 백발이 되고 신체가 반쪽이 되고보니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펜을 듭니다.

정말 후회도 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1970년 12월중순 그때 흑룡강성 할빈시 날씨는 정말 추웠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할빈시 외사과에서 래일 9시에 시 《소년궁》에 모이라고 통지가 왔습니다.

이튿날 시간을 맞추어갔더니 벌써 웬 사람들이 많이 보여 조용히 자리에 앉아들 있었습니다.

10시가 다 되여 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50대중반의 남성분이 들어와 우리와 마주 앉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조국에서 파견하여 할빈시에 온 리경수부장이라고 하면서 위대한 주석님께서 우리 해외공민들의 학습과 생활, 그리고 이모저모로 무슨 애로가 없는가고 하시며 항상 근심하고계신다고 하면서 우리가 조국의 형세를 얼마나 알고있는지, 학습들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우리들에게 묻고 나서 할빈학습반을 꾸리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기하였습니다.

당시 나는 나이가 22살이였습니다.

1970년 12월이 바로 나의 인생에서 공민사업을 시작하는 첫걸음이였습니다.

당시 리경수부장의 발언을 듣던 나는 갑자기 온몸이 화끈 달아오르며 저도 모르게 주석단앞으로 다가가 큰소리로 《공민여러분! 비록 우리는 같은 할빈시에서 살고있지만 서로 모르고 지내오지 않습니까? 오늘 이 기회에 학습반을 내옵시다.》라고 소리높이 웨치면서 내가 한 사람을 추천하겠으니 공민들이 생각해보라고 하고는 그들속에 앉아있는 나이가 50대이고 설계원에서 사업하는 공정사이며 지식정도나 년령도 적합한 김문걸공민을 추천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때 분위기는 아주 조용해졌습니다. 공민들은 김문걸공민을 잘 모르는 형편이고 또한 앞으로 자기들의 사업과 생활을 전적으로 맡아볼 책임자이기에… 나는 박문걸공민이 책임자로 나서면 그 누구보다도 공민들을 잘 돌봐줄수 있다는 생각으로 박수를 먼저 쳤습니다. 그러자 모든 모임참가자들은 우렁찬 박수를 함께 치며 호응해나섰고 그래서 할빈학습반이 정식 결성되였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우리 집을 림시 회의장소로 삼고 몇몇 공민들을 핵심일군으로 선정하여 할빈시 학습반을 성인조와 청년조로 나누어 학습하고 활동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할빈에 처음으로 공민조직이 나오게 되였으며 더우기 주재국 외사부문에서는 우리의 공민활동을 전적으로 지지해주었습니다. 공민들은 학습반이 결성된데 대하여 기쁘게 생각하면서 지지해나선것은 물론 중국주재 조선대사관에서도 할빈공민학습반을 적극 도와주었습니다.

조국에서 《로동신문》, 《천리마》, 《금수강산》, 소설 등 출판물들을 무료로 보내주어 우리는 한주일에 한번씩 조선중심소학교에 모여 노래도 배우고 춤도 배우며 공민활동을 활기차게 진행하였습니다.

1971년 4월 15일에는 할빈중심거리에 자리잡고있던 쏘련구락부《모데릉》에서 어버이주석님 탄생 59돐을 성대히 경축하였습니다. 우리는 행사에서 학습조에서 배운 노래와 무용을 무대에 올리여 어버이주석님의 탄생일을 뜻깊게 경축하였습니다.

할빈시는 흑룡강성의 중심이므로 성내의 가목사, 오상, 상지 등 책임자들이 계속 드나들었으며 령사관, 조국에서도 자주 할빈을 거치기에 할빈은 항상 분주하였습니다.

1972년 4월 15일 우리 할빈책임자 김문길동지는 조국의 초청을 받고 처음으로 위대한 주석님 탄생 60돐을 경축하는 대회에 영광스럽게 참석하고 돌아와 귀환보고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낮에 자기의 직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퇴근하면 서로 만나 각 구역을 다니며 학습조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비록 힘은 들어도 일하는 보람을 느끼였습니다.

그후 우리는 대사관과 련계하여 조국의 예술영화까지 자주 가져다 감상하군 하여 그 당시 동포들은 할빈시 공민학습조를 우러러 보았습니다.

1982년 4월 어버이주석님 탄생 70돐이 하루하루 다가왔습니다.

갑자기 조국에서 대사관을 통해 나에게 조국에서 진행하는 어버이주석님 탄생 70돐 경축대회에 참가하라는 련락이 왔습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이런 영광을 지니게 되여 너무도 흥분되고 마음이 설레여 그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웠습니다.

진정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우리 해외동포모두를 꼭같이 한품에 안아주시는구나, 내가 한 일이 무엇이 있다고 나에게 이렇게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시는가, 나는 저도 모르게 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끼게 되면서 앞으로 조국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고 속으로 결의를 다지였습니다. 당시 방문단성원중 내 나이가 제일 어렸습니다. 나는 부모와 같은 각 지방의 책임자들과 같이 중국주재 조선대사관에서 며칠 생활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때 대사와 같이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이어 우리들은 조국의 비행기에 탑승하여 영광스럽게 조국땅을 밟았습니다.

평양은 어버이주석님 탄생 70돐 경축분위기로 휩싸여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국가연회석상에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때 우리는 어버이주석님의 귀중한 연설을 직접 받아안았습니다. 이 얼마나 크나큰 영광과 배려입니까.

그뿐이겠습니까. 어버이주석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귀중한 선물까지 안겨주시였습니다.

그후 1989년 조국에서는 평양에서 진행된 제13차세계청년학생축전에도 저를 또 불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버이주석님을 모시고 기념사진까지 찍는 크나큰 배려와 영광을 안겨주었습니다.

나는 수십년동안 그 귀중한 기념사진을 가보로 여기고 집벽에 정중히 모시고있습니다.

나는 매번 이 기념사진을 바라볼 때마다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자신을 자책하고 더 많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다듬게 됩니다. 그후 조국에서는 또 나를 강습까지 시키고 2016년에는 제3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까지 참가시키였으며 지금에 와서는 할빈지구협회 회장의 중책까지 맡겨주었으니 진정 어버이주석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은혜, 그 배려를 내 혼자 다 독차지한 느낌입니다.

나이가 들고보니 지난날을 자주 돌이켜보게 되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나는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배려에 보답하겠는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나이관계로 몸을 움직이기는 불편하지만 생의 마지막까지 자기맡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하해같은 은정에 꼭 보답하렵니다.

 

주체111(2022)년 4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