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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1-18 12:31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7,622   추천 : 0  

김    현(재중동포)

 

11월 17일은 일제에 의해 《을사5조약》이 날조된지 115년이 되는 날이다.

흔히 사람들은 흐르는 세월을 두고 망각의 이끼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는 아물지 않는 상처로 응어져있는 피의 원한이 있다.

다름아닌 《을사5조약》이라는 불법무법의 강도적인 《조약》으로 조선을 강탈하고 40여년간이나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들씌운 일제의 만고죄악이다.

이미 세상에 널리 폭로된바와 같이 《을사5조약》은 나라의 최고주권자였던 황제의 승인과 수표, 국새날인을 받지 못한 비법무효한 협잡문서였다.

당시 로일전쟁의 결속과 함께 조선에 대한 완전한 식민지지배권을 꾀한 일제가 방대한 무력을 끌어들여 왕궁을 2중 3중으로 포위하고 삼엄한 경계속에 《조약》의 체결을 반대해나선 황제와 관리들을 위협공갈하면서 강압과 협잡의 방법으로 날조해낸것이 바로 력사에 기록된 《을사5조약》, 이른바 《한일협상조약》이였다.

이 침략적이고 기만적인 《을사5조약》으로 하여 조선은 일제의 완전한 식민지로 굴러떨어지게 되였으며 악독한 일제의 철권통치밑에서 우리 겨레는 40여년간이나 나라없는 망국노의 치욕과 설음을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조선사람은 일본법률에 복종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죽어야 한다.》는 폭언을 거리낌없이 늘어놓으며 조선사람의 말과 글, 성과 이름마저 빼앗으려고 미쳐날뛴 섬나라족속들의 범죄적만행을 어찌 말과 글로 다 표현할수 있겠는가.

정든 집과 고향을 등지고 산설고 물설은 남의 나라땅으로 남부녀대하여 가랑잎마냥 흩어져간 조선사람들은 과연 그 얼마였으며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죽음의 전장터, 살인의 고역장들에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이들은 또 과연 얼마였던가.

무려 840만여명에 달하는 조선의 청장년들이 일제의 해외침략전쟁터들과 죽음의 고역장들에 강제련행당하고 20만명의 조선녀성들이 일본군성노예로 끌어가 비참한 운명을 강요당하였으며 100여만명이 무참히 학살된 력사적사실은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용납못할 피비린 범죄적죄악에 대한 론박할수 없는 반증자료의 한토막이다.

오늘도 일본의 탄광과 광산, 바다밑을 비롯한 방방곡곡에는 혈육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조선인희생자들의 유골이 수십년세월 그대로 내버려져있으며 쌓이고 쌓인 원한을 풀지 못한 일본군성노예피해자들을 비롯한 과거 피해자들의 절규의 목소리가 세차게 터져나오고있는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일본당국과 극우세력들은 피비린 저들의 과거죄악을 한사코 부정해나서고있으며 파렴치한 군국주의부활책동으로 우리 민족의 가라앉을줄 모르는 대일적개심에 정면도전해나서고있다.

일본군성노예문제 하나만 놓고보아도 그렇다.

일본군성노예문제로 말하면 과거 일본당국이 민, 관, 군을 총동원하여 무려 20만명에 달하는 조선녀성들을 강제로 유인랍치하여 그들의 정조는 물론 인간으로서의 모든것을 깡그리 유린말살한 특대형 반인륜적범죄만행이다.

지금도 남조선을 비롯한 세계의 곳곳에 일본군성노예만행을 폭로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날을 따라 늘어가고있고 치떨리는 일제의 범죄적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들과 각계의 목소리는 국제적판도에서 그칠줄 모르고 터져나오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도 일본당국은 2014년 10월 발표된 《고노담화》에 대해 《강제련행을 립증하는 자료가 없는데도 인정한것이 큰 문제》라는 파렴치한 궤변을 늘여놓으면서 간사하고 비렬한 족속들로서의 가증스러운 몰골을 다시한번 드러내보였다.

하지만 세상이 다 아는바와 같이 일본군의 성노예만행자료는 지금까지 발견된것만해도 부지기수이다.

최근에도 어느 한 언론이 폭로한데 의하면 1938년 2월 일본외무성에서 내무성으로 보내진 문서에는 《일본군위안부 400명을 모집해 이송중이니 각 내무성과 지방청은 편의를 제공하라.》는 내용이 적혀진 공문서가 발견되였으며 또 《년령관계때문에 증명서를 발급할수 없는자는 녀급 등의 신분증명서를 발급받아 중국에 들어온 후 추업(위안부)에 종사한다.》고 작성된 문서도 발견되였다고 하면서 《이는 직업을 속여 소녀들을 위안부로 동원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까밝혔다.

조선인강제련행피해자문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 나가사끼와 규슈지역, 그리고 오끼나와를 비롯한 일본의 이르는 곳마다에는 일제에 의해 강제련행되여 고역을 치르고 생죽음을 당한 조선사람들의 피의 흔적이 력력히 남아있다.

지난 2019년 오끼나와 유골발굴 시민단체 가마후야(동굴파는 사람)의 대표는 《조선인들이 묻혀있을 법한 곳이, 유골이 오끼나와 곳곳에 있다. 일본정부가 식민지지배시기에 나쁜짓을 했으니 죄를 배상한다는 생각으로 조선인 유골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하면서 과거범죄를 부정해나서고있는 당국의 후안무치한 태도에 분노를 표시하였다.

지난해 일제강점시기 대표적인 반일투쟁의 하나였던 3.1인민봉기 100돐을 맞으며 일본의 《아사히신붕》은 《징용공 및 위안부문제는 일본의 통치가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대륙진출을 망상했던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고 조선사람들의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 등의 모든 권리를 빼앗았다.》고 폭로하였다.

그렇다. 《을사5조약》이라는 전대미문의 파렴치한 《조약》을 날조해내고 주권국가의 자주권을 여지없이 유린말살하였으며 조선민족에게 40여년간이나 노예의 삶을 강요한 일본의 만행은 천추에 한을 남긴 용납못할 반인륜적대죄악이다.

하지만 오늘도 일본당국은 저들의 피로 얼룩진 과거사를 미화하고 부정하는 놀음에 매달리는것도 모자라 끊기지 않는 독도강탈책동과 야스구니진쟈참배놀음, 헌법개악과 《자위대》의 현대화책동 등으로 우리 민족에 대한 재침의 칼을 벼리고있으며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고 광기를 부려대고있다.

결코 가리울수도, 부정할수도 없는 과거죄악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군국주의부활의 독기를 내뿜고있는 사무라이족속들의 골통에 무엇이 들어차있겠는가 하는것은 불보듯 뻔한 리치라 하겠다.

일본반동들은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서 식을줄 모르고 더욱더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는 반일의지가 과연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