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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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6-26 11:31
[회원들의 글] 상감령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85   추천 : 0  

                                                             권헌 재중동포

1950년, 중국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조직된 중국인민지원군은 <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들고  조선전장에 달려나와  우리인민을 피로써 도왔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중국인민지원군전우들의 불멸의 위훈을 기억하고 있다.

 

상감령전투는 1952년10월14일부터 11월25일까지 43일간 전선중부 오성산 남쪽기슭의 무명고지인 597.9고지와 537.7고지와 그 주위의 고지들에서 진행되였다.   이 두고지와 오성산사이에 작은 상감령마을이 자리잡고있어 이 전투를 상감령전투라고 한다.  상감령은 오성산의 문호이다. 오성산뒤로는  지탱할곳이 없어 40리 물러서야 하기에  지원군전사들은 전술적으로 중요한 이 고지들에 갱도와 진지를 굴설하고  엄밀히 고지를 지키고 있었다.

 

   10월14일 아침 , 적들의 <금화공세> 시작되였다. 320여문의 대포와 40대의 비행기가  3.7평방키로메터되는 이 두고지에 수만발의 포탄과 폭탄을 우박처럼  쏟아부었다.  고지는 불바다로 변하였고  연기는 해를 가리웠다.  127대의 땅크를 앞세운 미군제7보병사단과 남조선제2사단의 7개 대대의 병력이 여섯갈래로 나누어 고지를 향하여 기세사납게 덮쳐들었다. 빛발치는 총탄속에서  불타는 고지를 지켜 중국인민지원군제15군전사들은  갱도와 진지에 의거하여 십여배나 되는 원쑤들과 치렬한 전투를 벌리면서 침략자들을 무리로 쓸어눕혔다. 적들은 많은 주검을 내면서도 악착스럽게 달려들었다. 치렬한 총격전과 육박전이  저녁까지 계속되였다.  적들은 천여명의 시체와 부상자를 내면서 고지의 일부진지들을 점령하였다.      

                                      

 전투는 이튿날에도 계속되였다. 적들은 한개련대가 소멸되면 새로운 련대를 들이밀었다. 지원군도 손실이 엄중하여 새로은 병력을 투입하였다.  영용한 전사들은 새까맣게 밀려 올라오는 원쑤들에게 수류탄 벼락과 기관총탄을 퍼부으면서 무리로 족치였다. 적아간 참혹한 전투로 고지에는 시체들이 널려있고 피는 고지를 물들였다.  맹렬한 공방전이 벌어지면서 적들은 고지에 갱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고밀도의 포격과 폭격을 가하였다. 포격밀도는 2차대전의 최고수준을 넘었다. 산꼭데기는 2메터나 깎이웠고 고지는 1~2메터나  폭격에 뒤집혔다.  진지는 형체가 없고  갱도는 5~6메터 짧아졌다. 해가 지고 날이 갈수록 공방전이 계속되면서 미군이 우세한 화력으로 고지를 점령하면  지원군은 갱도를 리용해서 밤에 고지를 탈환하였다.

 

미군은 한주일이면 고지들을 점령할수 있으리라고 여기고 진공하였지만 함락할수없어  병력을 증가하였다. 쌍방은 병력를 점차 증가하여 전투는 대대급에서 련대급으로 사급에서 군규모로 확대되였다.

 

7일간 낮과 밤이 없는 전투에서 적군7000여명을 소멸하였다.

 

상급에서는  지원군전사들에게 갱도에 진입하여 실력을 보존할것을 명령하였다.  지원군전사들은 갱도에서 낮을 보내고 밤이면  고지우의 적들과 화점을 까부셨다.

 

 진지방어전 보다 간고한 갱도전이 시작되였다.  597.9고지에는 큰갱도 세개와 8갈래의 작은갱도 30여개의 방공동이 있다.큰갱도의 길이는 80여메터이고  높이는 1,5메터 너비는 1.2메터다.  두 고지에는 20개의  진지들이 있고 갱도와 련결되여  있었다.

 

상감령전투에서   불뿜는 적의 화구를 가슴으로 막아 아군의 전진의 길을 열러놓은 특급영웅 황계광과 두다리가 부러져도 전투를 계속하면서 수류탄을 쥐고 적진에 뛰여든  일급영웅 손점원의 영웅적인 사적은 전 중국인민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영용한 지원군전사들은 13일간 주야로 싸워 적  8000여명을 살상하였다.

 

미군은 손실이 커서 주공지역인 597.9고지를 남조선괴뢰에게 넘겼다. 적들은 15군전사들의 갱도 입구를 봉쇄, 폭파하고 수원을 끊고 독가스를 넣는 수단을 써서 갱도속의 지원군을 소멸하려고 날뛰였다. 지원군제8련의 전사들은 597.9고지 1호갱도를 목숨으로 사수하면서 적들과 반복적으로 14주야의 쟁탈전을 벌려 대소80여차의 반격으로 적 1000여명을 섬멸하고 적들의 화점을 까부시여 적에게 거대한 손실을 주어 금후의 반격에 거대한 작용을 일으켰다.  지원군은 포사격과 보병들의 반격을 배합하여 537.7고지우에 도사리고있는 괴뢰군들을 쓸어버리고 후방물품과 함께 갱도에 진입하여 병력을 보충하였다.

 

10월 30일, 지원군은 100문의 대포로 597.9고지에 무서운 포격과  맹렬한 공세로 고지우의 남조선괴뢰군을 요정냈다. 이튿날 미군과 괴뢰군이 고지를 빼앗으려고 필사적으로 덤벼들었으나 지원군전사들은 용감하게   싸워 598고지는 의연히 지원군의 수중에 장악되였다.

 

지원군제12군전사들이 상감령전투에 합세하였다.  537.7고지의 갱도가 폭격에 심히 파괴되였다. 갱도는 어둡고 공기가 혼탁하였다. 대소변을 제때에 처리하지 못해 냄새가 지독하여 질식되였다. 물이 없어 과자도 넘기기 힘들고 어떤 갱도에는 10명의 전사들이 총을 쥐고 굶어죽었다.

 

이 두고지가 오성산주봉과 거리가 1내지2리밖에 안되지만 10개의 봉쇄선을  통과하여야 하였다. 물한병을 보내는데도 몇명의 희생자를 내야하였다. 갱도에 탄약과 음식을 보내기가 어려웠다.

 

 마침 지원군제12군전사들이 537.7고지에 도사리고있는 남조선괴뢰군을 족치면서  갱도에 있는 전사들에게 후방물품을 보내주었다.  전사들의  희생적인 전투로 적들에게 점령당한 고지와 진지들을 탈환하고 원쑤들을 물리쳤다.  미군과 남조선괴뢰들이  감히 달려들지 못하여  상감령전투가  결속되였다.

 

쌍방이 10만의 병력을 투하하여 싸운 상감령전투에서   진지는 59차례 바뀌고 지원군은 적들의 900여 차례의 진공을 무리쳤다.  이 전투에서 미군을 포함한 만구천명의 적들이 살상되였다.

 

항미원조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  이땅에서 공동의 원쑤들을 쳐 물리친 중국인민지원군렬사들이 남긴 불멸의 위훈과 피로써 맺어진 조중인민의 국제주의적 친선은 대를 이어 영원할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