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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5-18 15:53
[회원들의 글] 5.18광주인민봉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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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헌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자주와 민주, 전두환퇴진을 요구하여 공수부대의 폭력진압에 맞서 무장으로 결사항전을 벌렸다. 


지난세기 70년대말, 박정희군사독재의 통치를 반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반파쑈민주화시위가 남조선각지에서 련속적으로 일어나면서 독재기반이 위급하게되자 미국은 새로운 대리인의 물색에 나섰다.    박정희가 정보부장 김재규에게 살해되고 최규하가 림시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찬탈하고 독재통치를 실시하면서 대통령이 유명무실해졌다. 김대중을 비롯 민주인사들이 민주선언을 발표하여 전두환이 퇴진할것을 요구하였다.  남조선전역에서 민주주의를 위한로동자, 학생들의 시위가 폭발하였다. 전두환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서울에서 모든 정치활동과 시위집회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민중들의 반독재시위는 더욱 고조확대되고 계엄령 철회와 전두환 퇴진을 강력히요구하였다.  약 10만명의 대학생들이 서울에서 집회를 열고 군부에 맞서 시위투쟁을 벌리고  3만여명의 학생들이 시민들과 함께 광주에서 시위투쟁에 나섰다.  급해맞은 전두환은 《긴급계엄령》을 발포하여  모든 정치활동 금지와 학업중지, 국회활동을  금지하고  김대중을 비롯한 민주인사들과 학생들을 체포하였다.


  5월18일, 광주시를 포위한 계엄군이 금남로 등 시내 중심에서 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이나 녀성을 마구 구타하고 짓밟으며 찌르는 등 잔혹한 진압행동을 하자 시민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계속되는 계엄군의  잔인한 무력진압에  시민들은 공포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적극적으로  학생시위에 가담하였다.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군경찰과 공방전을 벌이면서 시위는 점차 격화되면서  무력항쟁으로 변하였다. 계엄군은 시위대를 포위하여 구타하였으며 일부 고등학생까지 포함된 시위대는 돌과 화염병으로 저항하였다. 


 비내리는 밤에도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되었으며 이튿날에는 택시와 뻐스 운전수들이 광주역과 무등경기장에 모여 대형 뻐스와 자동차을 앞세우고 일시에 금남로에 집결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들을 앞세운 항쟁용사들은  계엄군을 밀어냈다. 학생들과 시민들은 도청을 중심으로하여 광주역 고속뻐스정거장에서 계엄군의 진입을 막았다. 


 21일, 30만의 군중들이 도청,광장과 주변의 금난로,충장로에 물샐틈없이 모여들었다. 분노한 시민들이 《민중항쟁본부》를 성립하고 한주일간 조직적인 대항을 하였다.시민군을 조직하여 손에 무장을 들고 계엄군과 싸웠다. 그들은 경찰국과 군대로부터 일부의 무기를 쟁탈하여 계업군과 바리케트를 쌓고 거리를 차지하고 대항하였다.  수만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도청광장에서 《민주시민수호대회》를 열고 군정부와 끝까지 대항할것을 결의하였다.시민들은 지원대를 조직하고 물품을 모아주고  항쟁용사들의 음식과 쓸 물건을 날랐다.의사와 호사들은 힘을 내여 부상자들을 치료하였다. 광주시민들의 정의로운 투쟁을 보도하지않고 외곡된 보도를 돌리는 통신사와 신문사를 불지르고 민주시민회보를 편집하여 각지에 광주항쟁의 진상과 계엄군을 폭행을 폭로하면서  광주사건진상을 알려주었다...


수천명의 공수부대군인들이 땅크와 함께 중심거리를 공격하였다. 광주시민들이 길에 누워 땅크의 전진을 막았지만 계엄군의 땅크는 꺼리낌없이 그들을 짓뭉개버렸다.임신부의 배를 가르고 녀대학생들의 옷을 벗기고 란도질하여 죽이고 부모들을 찾아 헤매던 아이들도 총탁으로 쳐 죽였다. 광주는 항쟁용사들의 피로 물들었다. 잔혹한 진압은 반미정서를 가일층 고조시켰다. 


   광주봉기에서4362명의 사망과 부상자가 발생하고 987명이 실종되고  3천명의 시민들이 불법체포,구금되였다고 한다. 


 수많은 항쟁용사들이 총탄이  비발치는 광주의 거리를 앞서서 나가며  웨치던 함성이 오늘도  들려오고있다. 40년이 지난 오늘도 쓰러진 항쟁용사들의 원한이 풀리지 않고 학살의 원흉과 진상이  력사에 기록조차 되지 못하고있으니  원통하지 않는가.


 광주의 진상을 밝혀질것이다.  광주항쟁용사들의 념원은  꼭 실현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