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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0-28 12:39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8,481   추천 : 0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최수봉제1부의장-

 

오늘은 10월 25일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69돐이 되는 뜻깊은 날이다.

나는 지난해 중국인민지원군 조선전선참전 68돐에 즈음하여10월 23일 총련합회에서 조직한 중국인민지원군로전사 및 렬사가족방문단성원들과 함께 조국방문을 진행하던  하루 하루를 잊을수 없다.

우리가 조직한 방문단성원들은 전부 지원군로전사들 아니면 렬사후대들이다. 나는  조가린단장을 제외한 방문단 전체 성원들은 단동에서부터 알게되였다. 

방문단성원들은 중국 남방으로부터 북방에 이르기까지 전국적 범위에서 추천된 사람들이다.

지원군들과 관련된 사업은 비록 재중조선인총련합회에서 맡아할 사업은 아니지만   조가린단장과 같이 거의 80고령의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전에 청춘시절 조선전선에서 침략자들과 함께 싸우다 희생된 전우들을 안치한 조선에 있는 렬사릉을 찾아 성묘하겠다는 소망이 바로 조선전선에 참전했던 지원군로전사들의 소박한 생각이고 또한 렬사후대들이 조선전선에서 희생된 자기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을 한치한  묘지를 찾아 효도를 하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고려하여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의 협조밑에 중국인민지원군로전사 및 렬사가족방문단을 조직하여 강동, 개성, 회창, 구봉리, 상갑리(상감령)렬사릉을 찾아 성묘활동을 진행할수 있도록하였다.

조국방문을 진행하는 과정에 나에게 제일 깊은 인상을 남긴것은 10월 28일 3.8선 전연일대에 자리잡고 있는 구봉리와 상갑리 지원군렬사릉을 찾을때였다.

거리상 관계로 전날에 마식령시키장에 와서 하루밤 숙박하고 이튼날 (28일) 이른 새벽 아침식사를 끝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마식령시키장은 함박눈이 펑펑 솓아져 내려오는것이였다.

안내원들은 날씨가 좋지않아 험한 구봉리까지 가기가 힘들것같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문의하였다.

조가린단장을 비롯한 전체 방문단성원들은 날씨가 아무리 나빠도 전쟁시기와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무조건 앞으로 내밀고 나가자고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은 함박눈을 맞받아 구봉리방향으로 떠났다.

마식령시키장에서 떠나 원산으로 가는 10리 동굴을 건너니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았다. 방문단성원들의 얼굴은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뻐스는 철령아래 사과바다를 지날때 안내원은 고산과수농장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안내원동지는 지난날 땅이 질어 진고산, 바람세차 풍고산으로 불리우며 사람 못살 고장으로 알려졌던 고산땅은 위대한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원수님의 관심속에 오늘은 대규모과일생산기지가 희한하게 일떠서 철령아래 사과바다를 펼쳐지게 되였다고 하면서 긍지스럽게 자랑하였다. 고산과수농장을 경과하는 도로가 좋아서 뻐스의 속도는 대단히 빨랐지만 과수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면적이 대단히 컸다. 방문단성원들은 알뜰하게 아꾸어놓은 과수농장을 바라보면서 흥분된 심정을 금치못해하였다.

뻐스는 어느덧 세포군등판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세포등판에는 이미 눈이 쌓여있었다. 날씨는 갑작스럽게 또 변하기 시작하더니 안개가 짙게 끼기 시작하였다. 뻐스는 짙은 안개속에서 조심스럽게 앞으로 달리였다. 몇십키로 달리여 겨우 안개속을 벗어날 무렵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우박이 쏟아지는것이였다. 자기들의 친인들이 안치된 렬사릉에 간다는 격정에 사로잡힌 방문단성원들에게는 날씨의 변화는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듯 싶었다.

뻐스가 김화군을 경과할때 조가린단장은 중국인민지원군 리상 군단장의 영웅적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전투명령을 받고 부대가 금성일대에 들어왔을때 일이였다. 그때당시 조선인민들은 적들의 비행기가 자주 이 일대에 드나들기때문에 집집마다 땅굴을 파고 우에다 벼집으로 간단히 가리우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국인민지원군이 이 일대에 주둔한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인민들은 자기들은 굶는 한이 있더라도 땅굴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지원군들에게 제공해주던 감격스러운 장면은 지금도 자기의 머리속에 생생이 남아있다고 하면서 그때 조가린단장이 주둔하고 있던곳과 20여키로 떨어진곳에 바로 69군 리상 군단장이 있는 지휘부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때 리상 군단장이 병에 걸려 앓고있을때 적들의 《가을철공세》전역을 발동하였다. 적들이 투입한 병력과 무장장비들은 1951년《가을철공세》규모보다 훨씬 클 뿐만아니라 잔인무도한   화학무기까지 사용하였다. 앓고 있던 리상 군단장은 적들이 사용한 화학무기에 감염되여 얼굴이 말이 아니였다. 전선 의료진은 조건이 더 좋은 후방병원에 입원해야 된다고 간곡히 권고하였지만 리상 군단장은 자기의 지휘소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악화되기 시작하면서 패혈전과 뇌막염으로 번지게 되여 병이 걸려서 단 8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리상 군단장의 나이는 38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부대 수장(首长)을 가슴뜨겁게 회고하였다.

방문단성원들은 변덕스러운 날씨를 이겨내면서 구봉리 지원군렬사릉에 힘들게 도착하였다. 금성반격전에서 희생된 지원군렬사들이 너무도 많아 렬사릉은 한무덤에 몇백명의 렬사들을 안치하였다. 시간상 관계로 방문단성원들은 묘비에 새겨져있는 이름들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자기들의 친인을 찾은후 렬사릉에 꽃다발을 증정한후 추모식을 진행하고 친인들을 찾은 렬사후대들은 친인의 묘앞에서 성묘하고 상감령으로 떠났다. 상감령전투에서 희생된 렬사들은 상갑리 지원군렬사릉에 안치하여 있었는데 1호릉과 2호릉으로 분리되여 있었다. 우리가 상갑리에 도착하였을때에는 이미 어둡기 시작하였다. 마음속으로 우둠속에서 어떻게 성묘하겠는가 하면서 많이 걱정하였다. 그런데 상갑리 지원군렬사릉에 도착하니 흐렸던 날씨가 갑자기 구름이 온데 간데 없어졌고 서쪽하늘가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비치여 방문단성원들은 붉은 저녁노을이 비춰주는 속에서 자기들의 친인을 찾아 중국에서 들고 간 술, 단배, 사탕, 과자, 과일들을 묘지앞에 차례놓고 눈물을 흘리며 성묘하였다.

료해한데 의하면 구봉리와 상갑리 지원군렬사릉은 군사분계선 3.8선과 가까워 군사통제구역이다. 그리하여 이곳에는 특별 허가를 받지않고는 절때 올수없는 곳이라고 한다.

이런 실제정황을 료해한 지원군로전사 및 렬사가족방문단 전체 성원들은 재중조선인총련합회에서 중국인민지원군들에게 대한 뜨거운 정을 안고 매우 어려운 이번 성묘활동을 성공시켜준데 대하여 거듭 감사의 정을 토로하였다.

나는 지난해 중국인민지원군로전사 및 렬사가족들과 함께 성묘활동을 진행한지 1년이 지난 오늘도 그때 그 감동적인 장면이며 땅을 치며 통곡하던 지원군후대들의 슬푼 울을소리가 아직도 나의 귀전에서 울리고 있다. 더우기 28일 새벽부터 변덕스러운 날씨를 더듬어 보면서 60여년전 조선전선에서 조중 공동의 원쑤들을 물리치는 전투에서 희생된 렬사들이 마치나 오래만에 자기들의 친인이 찾아온데 대하여 변덕스러운 날씨를 가지고 친인들의 의지를 검증해보는것 같은 느낌이였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에서는 우리가 하는일이 조중친선에 유리한 일이라면 힘이 닿는데 까지 지원군로전사들과 렬사가족들의 소망을 풀어주기 위하여 적극 노력할것이다.

 

2018년 10월에 총련합회에서 조직한 중국인민지원군로전사 및 렬사가족방문단성원들과 함께 조국을 방문한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