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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14 15:22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8,671   추천 : 0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전 부의장 최청산동지가 뜻밖에 세상을 떠났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최수봉부의장과 한길수선전국장은 11월 10일 흑룡강성 해림시에 도착하여 해림시 영빈관에서 성대히 진행된 최청산동지추모회에 참가하였다.

 

추모회장 정면에는 최청산동지의 화상을 비춘 전자막과 중국글로 된《고 최청산선생 귀체고별식》이라는 글발이 새겨져 있었으며 그 오른쪽에는 해림시인민정부 외사판공실, 공안국 출입경해림시대대, 재중조선인총련합회, 해림시수도공사, 해림시조선족로인협회 등 기관단위들에서 보내온 화환들이 정렬되였으며 량옆에는 고인의 가족들과 장례악대가 정렬하였다.

 

추모회에는 해림시인민정부 외사판공실 과장, 공안국 출입경대장을 비롯한 5명의 간부동지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최수봉부의장과 한길수선전국장, 김영일 해림시지부장을 비롯한 재중조선공민들, 해림시수도공사 직원들을 비롯한 친척, 친우 등 200여명이 참가하였다.

 

추모회는 장송곡이 장중하게 울리는 가운데 고 최청산동지의 략력을 담은 사진들이 전자막에 비추어졌으며 애도사가 선포되였다.

 

애도사는 1938년 4월 12일 흑룡강성 림구현 오림진에서 출생한 최청산동지는 1946년 12살대 어머니를 따라 조선에 건너가 학습하였고 1954년에 오림진으로 돌아와 생활하였으며 1955년도부터 1962년까지 림구현 토기공장에서 사업하였고 1963년도 부터 1969년까지 해림진방산부문에서 사업하였으며 1970년부터 1981년까지 해림현수도공사에서 사업하면서 해외동포들이 사는곳 그 어디에나 따뜻이 비쳐드는 위대한 수령님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성장하였으며 그후 공민학습조 책임자, 재중조선인총련합회본부 사무부의장으로, 총련합회 고문으로 사업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어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최수봉부의장이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 조전을 발표하였다.

 

조전에서 조선해외동포원호위원회는 가슴아픈 비애의 마음을 안고  최청산동지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으며 1970년대초부터 공민학습조 책임자의 중임을 맡고 해림시  수도공사장에 출근하는 바쁜 속에서도 공민사업에 자기의 한몸을 다 바치고 오래동안 재중조선인총련합회 고문으로 사업하면서 위대한  수령님들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에 대한 티없이 맑고 깨끗한 충정의 한마음을 다 바쳐온 선생의 애국충성심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라고 표시하였다.

 

다음으로 재중조선인총련합회 한길수 선전국장이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조전을 발표하였다.

 

조전은 고 최청산동지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의 해외교포운동사상을 높이 받들고 우리 공민들을 위한 사업에 나섰고 후에는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사무부의장으로 사업하면서 총련합회사업을 책임지고 총련합회의 강화발전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여왔으며 고령으로 귀향한 후에도 총련합회 고문으로 사업하면서 총련합회와 조국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해림시조선공민들을  굳게 묶어세웠다고 하면서 조국에 대한 높은 충성심과 애국심을 지니고 오랜기간 총련합회 애국사업을 하여온 최청산고문동지를 잃은것은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전체 재중조선인들에게 있어서  가슴아픈 손실로 된다고 하면서 고 최청산고문동지는 비록 세상을 떠났으나 총련합회 애국사업을 위하여 일한 그의 공적은 길이 남아 있을것이라고 구가하였다.

 

이어 참가자들은 고 최청산동지의 시신과 고별인사를 올리고 유가족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하였다.

 

장례식에 앞서 11월 7일 해림시인민정부 외사판공실 학과장, 공안국 출입경 우대장을 비롯한 간부동지들은 해림시인민병원을 찾아 병석에 있는 최청산선생을 따뜻이 위문하였다.

 

                              – 재중조선인총련합회 한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