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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0-18 16:30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8,753   추천 : 0  

       심양시 권헌지부장

 

 

무더운 여름이다.

 

그래도 아침은 서늘하다. 오늘은 내가 강습단 제1기성원으로 조국에 가는 날이다.

 

아침일찍 일어나 준비를 끝내고 안해를 위로하고 집을 나섰다.

 

벌써 반년째 앓고 있어 몸이 허약한 안해를 아들에게 부탁하고 떠나려니 어쩐지 야속한 생각이 든다. 

 

김연주단장을 비롯한 강습단 일부 성원들이 홀의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들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하다가 정시에 고속렬차를 타고 단동역에 도착하니 역전에서 먼저 도착한 강습단성원들이 우리들을 기다리고있었다. 

 

5월에 경제고찰단으로 갈때 동행하였던 길림시의 김련원도 왔다. 둘러보니 우리 일행이 12명인데 북경, 대련. 길림. 심양 등 각지에서 모여온 잘아는 우리공민들이기에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단동세관은 사람들이 많아서 분주하다. 력사적인 조중수뇌상봉 이후부터 조국에 려행가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세관인원들도 짜증을 내는 모습이 보인다. 시끄러운 세관수속을 마치고 렬차에 올라  출발을 기다렸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압록강대교를 지날때마다 지켜보는 전쟁때 파편에 구멍이 뚤린 철교다리와 그 옆의 끊어진 다리우로 려행손님들이 오고가는데 사람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알려주는 생생한 기념비이다.

 

멀리 새로 건설한 국경다리가 보이는데 현대감이 난다.           

                                                                 

조국의 국경도시 신의주에 도착하니 렬차장이 차표없는 사람은 내리라고 하면서 오후 4시에 관광렬차를 타고 가라고 하는데 그 차도 표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렬차표가 3장 뿐이여서 신의주 세관의 책임일군을  찾아 사정을 하여 다시 기차에 오르게  되였는데 차표없이 국제렬차를  타기는 처음이다. 

 

려행사 손님들도 표가 없는지 뒤늦게 기차를 탔다. 기차가 신의주역을 떠난다. 처음 조국에 오는 손님들이 차창넘어 흘러가는 도시의 층집과 거리의 활기있는 시민들을 유심히 지켜보고있다.

 

가혹한 제재로 사람들이 가난과 굶주림에 허덕이고 논밭은 황폐화 되였는줄로 생각하였는지 중국말로 듣는것과 많이 다르다고 한다. 

 

우리는 두 곳으로 나뉘여 빈자리를 찾아 이야기하면서 점심을 먹었다.  창밖을 바라보니 드넓은 전야의 규격포전에 알뜰이 가꾼 벼들이 풍년든 가을을 약속하듯 푸르싱싱 자라고 잡초한대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머리에 수건을 쓴 녀인들이 부지런히 논두렁의 풀을 베거나 비료를 뿌리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 보이던 사람들이 뭉켜서 일하던 광경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들이 내가에서 물장난을 치는  정경을 보니 옛일들이 떠올라 벌써 50여년 세월이 지났구나, 인생이 짧다는 생각에  마음이 언짢다.

 

흰 두루미들이 푸른논에 우뚝서서 우리를 쳐다보고있다. 산에는 숲이 우거졌는데 전에 보이던 민둥산들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식수를 많이 한것 같다. 조국에 자주 오기에 기차역 이름도 익숙하여 지도를 꺼낼 필요가 없었다.

 

저녘 무렵에  평양역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역에 마중나온 사람들이며 확성기 소리에 소란하다. 우리는 마중나온 관계부문 일군들과 친절히 인사를 나누며 차에 올랐다. 정답고 낯익은 평양역 앞에 사람들이 분비고 차들이 막히는데 길건너 층집너머로 기중기들이 보인다. 아마 높은 집들을 짓는것 같다. 우리는 먼저 만수대언덕의 높이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들의 동상에 인사드리고 숙소에 행장을 풀고 관계부문 일군들과 함께 저녘식사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부터 글 쓰기 수업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초청한 선생님들이 먼저 조국의 현 정세와 당정책을 알기쉽게 해설하였다. 그리고 편지,성명, 담화, 론평, 기행문과 감상문들을 쓰는데 꼭 지켜야 할 원칙과 주의사항들 그리고 방법 등에 대하여 자세히 가르쳐 주고는 우리들에게 숙제를 내준다. 이런식으로 련속 삼일동안 숙소에서 선생님들의 강의를 듣고 글을 쓰게하고는 선생님이 직접 숙제를 거두어 평가해주었다.

 

모두들 나이에 관계없이 열심히 듣고 기록하면서 글들을 썼다. 나도 글 두편을 썼는데 합격하였다. 글 쓰기 수업이 끝나고 기념으로 참가증을 들고 사진까지 찍었다. 실지 글을 쓰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생활하기에 중국말과 중국글을 잘 알아야 한다. 중국글은 중국사람도 다 알지못하는 매우 복잡한 글로서 조선사람은 더 공을 들여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이나 생활상에서 어려움이 생긴다. 또 글을 쓰려면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조국의 형세와 정책을 모르면 글을 쓸수없으며 또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글쓰는 재주가 있어도 발표할 곳이없다. 그러기에 우리《백두-한나》잡지에 투고하는 사람이 적다.

 

 이튿날 우리는 피로도 풀고 머리도 식힐겸 겸사 겸사 룡악산에 산놀이를 갔다. 이 날이 전승기념일인데 평양시가 조용하다. 중복이여서 날씨가 더워도 기분이 상쾌하다. 푸른산 푸른밭 하늘도 푸른데 내 마음도 즐겁다.

 

안내원들과 함께 룡악산 송덕정이라는 정자아래에 이르니 구름이 끼여 평양은 보이지 않고 산기슭에 야영소가 보인다. 저멀리 벌판을 흐르는 강줄기가 비가내려 그런지 누렇다.


시원한 산바람에 땀에 젖은 옷자락을 날리니 마음이 유쾌하다. 정자우에서 사람들이 불고기를 하고 그 아래 좀 평평한 곳에도 사람들이 서너군데 모여 불고기를 한다. 산우에는 산불이 발생하지 않는 모양인지 금지시키는 사람이 없다. 한참 쉬면서 땀도 식히고 사진도 찍은 후 산아래로 내려오니 숙소에서는 점심밥은 숙소의 1층에서 오리불고기를 하니 빨리 돌아오라고, 다 준비하고 기다린다고 련속 전화가 왔다.

 

급히 속소로 돌아오니 정말 음식을 다 차려놓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기가 이리저리 날리는데 불고기 배풍을 전문적으로 하는 나는 오히려 이런자리가 기억에 남을것 같다. 저녁에 원호위원회 간부동지가 숙소에 와서 우리의 이번 글쓰기 수업을 총화하면서 글쓰기가 피말리는 일이다고 하면서 로동신문을 자주봐야한다고, 글이란 자주써야 제고된다고, 《백두-한나》도 이전보다 많이 제고됐다고 고무격려하였다. 그러면서 지금 중국에 사는 일부 우리공민들이 생활상에서 많은 애로들이 생긴 것을 보고받고 가슴아프다면서 꼭 해결될것이라고 위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