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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20 06:16
[지부활동소식] 기층공민사업일군이였던 차경애공민을 회억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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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공민사업일군이였던 차경애공민을 회억하여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제5차대회정신을 관철하여 새로 선거된 최은복의장을 위수로 하는 《2. 16경축 재중조선인총련합회준비위원회》의 지시따라 연길에서 진행하는 경축행사를 그 어느때보다 성대히 치르려는 산하 조직들과 행사에 동원된 우리 공민들의 열성을 보면서 전룡정시지부 동성용진 분회장이며(그때는 공민수가 100명) 후에는 룡정시지부일군으로 사업하던 차경애공민이 떠오른다.

전쟁시기 중국에 왔다가 전쟁후 부모형제는 귀국하고 홀로 외가집에 남아 자란 차경애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아주 강하였다.

20세기 90년대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 진행된 애국학습에 참가하여 삶의 도리를 깨우치고 조국을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장군님께 충성다할 결의를 다진 그는 공민사업에서 남다른 열정을 다하였다.

언제나 밝고 쾌활한 성격에 노래도 잘 부르고 춤추기를 즐기는 그는 공민들과의 단결도 우의도 깊었고 누구나 좋아하는 공민이였다.

해마다 진행하는 연길행사에는 남다른 열성을 보이며 룡정동무들을 이끌고 노래련습을 다니며 때로는 자기집에서 단체식사를 해가면서 시간을 맞추어 연길로 달리기도 하였다. 우리 공민들은 해외에서도 잘살아야 한다며 떡장사와 작은 식당도 운영하며 공민사업에 열성을 다하던 그가 수년전 불치의 병진단을 받게 별로되였다.

그러나 그는 병마에 굽어들지 않고 더 굳세게 투쟁하며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보람있게 살아갔다.

룡정시 일부 공민들은 알지만 그가 불치의 병진단을 받고도 2008년, 2009년 연길에서 진행하는 2. 16경축예술공연에 동원되여 노래를 불렀다는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을것이다. 같이 노래부른 공민들도 선생들도 몰랐다. 오직 장군님을 모시는 일에는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열성을 다하겠다는것이 그의 의지였다.

우리 조국에서 제2차핵시험에 성공하고 인공지구위성 《광명성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리도 기뻐하며 우리 나라는 이제는 첨단과학의 강국으로 되였다. 핵억제력을 가진 당당한 군사강국이 되였다며 《미국놈들이 핵을 포기하라고? 어림도 없다! 우리 인민들이 핵억제력을 소유한 자주국방을 가진 군사강국으로, 그 어떤 놈들도 함부로 넘겨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얼마나 고생하며 얻은 승리라고 포기할수 있느냐 》며 놈들을 저주한 그였다.

그러던 그가 2009년 9월부터 아주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꼭 병마와 싸워이기고 다시 연길에서 진행하는 2. 16경축무대에 나서겠다며 불굴의 의지로 병마와 싸웠다.

룡정시 공민들은 그에게 좋다는 약은 다 구해주고 업어 층계를 내리며 병원에도 다니고 간호도 하여주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인덕정치의 사랑속에 살아온 공민이기에 인간사랑의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남기게 되였다. 병석에서도 변경통행증이나 려권으로도 조국에 쉽게 다닐수 있으며 가족들까지 데리고 친척방문려행도 할수 있다는 장군님의 배려를 받아안고 눈물을 흘리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 머리숙여 감사를 표시하였으며 이제는 병이 나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조국의 본가집에 가서 아이들에게 외삼촌들도 인사시켜야 되겠다고 하며 그렇게도 기뻐하였다.

우리 공민들이 꿈결에도 그리며 살아온 조국으로 가족들과 함께 다니게 되였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지난해 12월 재중조선인총련합회 5차대회를 계기로 조국에서 총련합회 일군들과 함께 공민사업료해로 룡정으로 간부들이 오게 되였다. 차경애동무의 정황을 보고받고 여기까지 왔다가 어떻게 지나겠느냐며 그의 집을 찾아 따뜻이 문안하여주었다. 그는 빨리 치료하고 일어나야 다가오는 2월의 명절에 노래부르지 않겠느냐고, 꼭 새해전에 건강을 회복하고 일어나 노래부르겠다고 눈물이 글썽하여 말하기도 하였다. 그후 친척들과 동무들이 병문안을 올 때면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보내신 조국의 간부들이 총련합회 일군들과 함께 별로 한일도 없는 자기를 병문안해주고갔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도 행복에 잠기였던 그였다.

그는 이번 행사준비로 룡정동무들이 연길로 매일 다닌다는것을 알고는 자기 몫까지 위대한 장군님을 위하여 더 잘 불러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갔어도 이름없는 한 공민의 애국심과 수령에 대한 정성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것이다.

재중조선인총련합회 룡정지부
주체99(2010)년 2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