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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14 14:39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947   추천 : 0  

(위대한 주석님의 서거 28돐에 즈음하여)

 

그리움으로 불타는 7월이다.

삼천리조국땅에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하가 세차게 굽이치는 오늘 8천만 우리 겨레의 눈앞에 우렷이 안겨오는 불멸의 글발이 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첫 페지에 아로새겨진 우리 주석님의 친필글발이다.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 진리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김일성

새기면 새길수록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며 이 땅우에 인민을 위한 불같은 사랑과 헌신의 력사를 수놓아오신 어버이주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가 어려와 천만인민의 심장을 뜨겁게 적셔준다.

 

3.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생애는 인민의 행복을 위함이라면

하늘의 별도 따오고 돌우에도 꽃을 피우신 희생적인 헌신의 한평생이다

 

오늘도 우리 인민이 어버이주석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속에 심장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다.

 

아침에 비내려도 인민을 찾으시고

깊은 밤 눈내려도 온 나라 돌보시네

수령님 좋은 날에 오시여도 되시련만

오신 길 또 오시여 사랑만 베푸시네

 

이 세상에 우리 주석님처럼 인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눈비도 맞으시고 진창길도 걸으시며 수천척지하막장에도 내려가시고 성에가 불리는 랭동창고에도 서슴없이 들어가시면서 한생을 불면불휴의 헌신으로 자신을 깡그리 불태운 위대한 수령, 자애로운 어버이는 일찌기 없었다.

우리 인민의 가슴을 뜨겁게 적셔주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위대한 주석님께서 주체37(1948)년 9월 어느날 서해기슭 한끝에 있는 숙천군 창동리에서도 동떨어진 남동마을을 찾으시였을 때 있은 일이다.

이곳에서는 우물을 파도 짠물밖에 나오지 않아 별수없이 이 고장사람들은 곤두벌레가 와글거리는 웅뎅이물을 채로 밭아서 먹지 않으면 안되였다.

웅뎅이에 고인 비물을 마타리물이라고 하면서 마시다보니 사람들은 이름모를 토질병에 걸려 제명을 못채우고 피를 토하다가 죽어가군 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마을에서도 제일 가난해보이는 잔디로 벽을 쌓은 떼장집에 가서 주인을 찾으시고 어쩔줄 몰라하는 로인에게 물 한사발을 청하시였다.

장군님께 온전한 물 한사발도 드리지 못하는 이 못난 백성을 용서하라고, 이 남동리물은 어지러워서 마시면 안된다고 죄송스럽게 아뢰이는 로인에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그럼 이 마을사람들이 어떤 물을 마시고 사는지 보기라도 하자고 하시며 며느리가 가지고 나온 뿌연 마타리물사발을 받아드시고 그것을 천천히 기울여 한모금 넘기시였다.

그러자 로인은 기겁하여 비명을 지르며 나라의 임금님께 마타리물을 마시게 했으니 이제 남동마을이 천벌을 받게 됐다고 하늘을 우러러 한탄을 하였다.

그러는 로인에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로인님은 아직도 나를 임금이라고 합니까, 우리 나라에서 임금은 인민이고 나는 그 임금의 신하입니다, 로인님이 한평생 마신 물을 한모금 넘겼는데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그러십니까, 로인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나는 오늘밤 이 댁에서 자고 가려고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저녁 어버이주석님께서는 그 떼장집에서 마타리물로 끓인 시래기장국으로 음식을 드시고 마을농민들과 밤이 깊도록 담화를 하시며 이 고장 사람들에게 맑은 물을 마시게 하기 위해서 평남관개공사를 빨리 다그쳐야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여태 외지에서 오는 손님들은 기침을 깇고 피가래를 뱉는 이 마을사람들을 전염병자처럼 멀리하였는데 마을사람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고 그들이 먹는 물맛까지 보시는 위대한 주석님을 우러러 이 고장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쏟고 또 쏟았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주체45(1956)년 여름 동유럽 마쟈르의 어느 한 화학섬유공장을 찾으시였을 때였다.

지독한 가스냄새로 숨쉬기조차 힘든 공장을 장시간에 걸쳐 료해하시던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앞을 막아나서는 수행원들에게 우리 인민에게 남부럽지 않게 옷을 해입히자면 화학섬유공장을 빨리 복구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유해가스를 없앨 방도부터 찾아야 한다, 참작해볼것이 있으면 참작해보자고 하시며 보슬비까지 내려 여간 미끄럽지 않은 벽에 붙어있는 어설핀 수직사다리를 잡으시고 공장의 지붕에까지 올라가시였다.

우리 인민이 비단옷을 입게 되고 우리 로동자들이 그 역한 냄새를 맡지 않고 일하게 된다면 백번, 천번이라도 이런델 다니겠다고 뜨겁게 말씀하시며 미끄러운 지붕의 모서리까지 나가시여 손으로 바닥을 짚어보시는 위대한 주석님의 모습을 뵈오며 인민의 행복을 위해 바치시는 그이의뜨거운 헌신의 모습앞에 수행원들뿐아니라 그 나라의 국가수반도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한평생 이어가신 인민을 위한 수천수만리 현지지도의 길우에는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존경하는 김정숙어머님께서 서거하시기 전날에도 미루벌의 물문제를 풀어주시기 위하여 미루등농민들을 찾으신 눈물겨운 이야기도 있고 서해바다의 짠물이 밀려들어 포전에서 논벼들이 짠물을 먹고 노랗게 죽어가는것을 보시고 몸소 논물까지 맛보시며 대책을 세우신 가슴뜨거운 이야기도 있으며 인민들에게 하루빨리 백미밥을 먹이시려 신발이 쑥쑥 빠지고 바지자락까지 푹푹 젖어드는 간석지의 감탕판, 진눈까비내리는 험한 길을 앞장서 헤쳐가신 희생적인 헌신의 이야기들이 끝없이 수놓아져있다.  

오늘도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인 주체83(1994)년 6월 19일 80고령의 불편하신 몸으로 온천군 금당협동농장을 찾으시였던어버이주석님의 자애로운 영상을 우리 인민은 잊지 못하고있다.

그날은 류별나게 세찬 바람이 불었는데 일군들이 이렇게 바람세찬 날씨에 험한 길을 걸으시면 어떻게 하는가고 막아나서자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일없다고, 인민들이 잘살게 되면 그 어떤 험한 길도 얼마든지 걸을수 있다고 하시며 오랜 시간 포전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어버이주석님께서 서거하신 이후에야 이곳 인민들은 그날 주석님께서 인민들이 가슴아파할가봐 지팽이를 차안에 두시고 불편하신 몸으로 포전길을 걸으셨다는것을 알고 가슴미여지는 아픔으로 목메여 울고 또 울었다.

이렇듯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해 어버이주석님께서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진행하신 현지지도는 144만 5 000여리에 달한다.

이것은 백두산에서 한나산까지 301번 왕복한것과도 같고 지구를 14바퀴반이나 돌수 있는 거리와 맞먹는 수자이다.

사랑하는 인민에게는 이 세상 제일 좋은 모든것을 안겨주시고도 자신께서는 가실 때에조차 한폭의 붉은기만을 얹고 가신 우리 주석님의 혁명생애는 정녕 이민위천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하시고 오로지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뜨거운 사랑과 정,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오신 인민의 어버이의 위대한 한생이였다.

위대한 주석님의 이민위천의 높은 뜻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도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인민행렬차의 기적소리를 높이 울려가시였고 오늘은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또 한분의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께서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의 길, 결사헌신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가고계신다.

위대한 수령님들을 모시듯이 인민을 정히 받드시고 수령님들의 뜻과 정으로 인민을 보살피시며 인민대중제일주의의 장엄한 새 력사를 펼쳐가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을 높이 모시여 위대한 수령님들의 인민사랑의 력사는 변함없이 흐르고 우리 조국은 영원한 인민의 나라로 세세년년 빛을 뿌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