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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7-14 14:35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913   추천 : 0  

(위대한 주석님의 서거 28돐에 즈음하여)

 

그리움으로 불타는 7월이다.

삼천리조국땅에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의 대하가 세차게 굽이치는 오늘 8천만 우리 겨레의 눈앞에 우렷이 안겨오는 불멸의 글발이 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첫 페지에 아로새겨진 우리 주석님의 친필글발이다.

《혁명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민을 믿고 인민에 의거하면 백번 승리하지만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되면 백번 패한다는 진리를 삶과 투쟁의 좌우명으로 삼아야 한다. 김일성

새기면 새길수록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며 이 땅우에 인민을 위한 불같은 사랑과 헌신의 력사를 수놓아오신 어버이주석님의 고귀한 혁명생애가 어려와 천만인민의 심장을 뜨겁게 적셔준다.

 

1. 위대한 김일성주석님의 혁명생애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신

인민적수령의 숭고한 한평생이다

 

력사에는 지칠줄 모르는 투쟁을 일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로동계급과 인류의 해방위업에 공헌한 위인도 있고 애국을 좌우명으로 삼고 자기 조국을 위해 헌신한 명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 주석님께서는 인민을 하늘처럼 여긴다는 이민위천을 필생의 좌우명으로 지니시고 한평생을 오로지 인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인민의 어버이, 인민의 수령이시였다.

민족수난의 시기 만경대의 추녀낮은 초가집에서 탄생하시여 일가분들로부터 애국, 애족, 애민의 정신을 물려받으시며 성장하시던 나날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자신도 인민속의 한 존재이며 그 인민을 떠나서는 순간도 살수 없고 나라의 독립도 이룩할수 없음을 뇌리에 새기시였다.

이것은 위대한 주석님께서 이민위천의 좌우명을 내세우시게 된 중요한 바탕으로 되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 인민의 힘은 무궁무진하다는것을 처음으로 직접 목격하신것은 3.1인민봉기때였다.

그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8살의 어리신 나이에 시위대렬에 들어서시여 시위군중과 함께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시며 보통문앞까지 가시였다.

이날 민족의 류혈을 처음으로 목격하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우리 인민의 강인한 투쟁모습앞에서 우리 인민은 남의 노예로 살기를 원치 않는 자주정신이 강한 인민이며 나라를 찾기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와 열렬한 애국정신을 가진 인민이라는것을 절감하게 되시였다.

주체16(1927)년 겨울 어느날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새날소년동맹원들과 백산청년동맹원들, 부녀회원들로 연예선전대를 무어가지고 무송일대에서 순회공연을 하시던중 두지동마을에서 의병투쟁을 할 때 하루밤에 천리를 걸었다고 하여 차천리란 별명이 붙은 차로인을 만나시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후날 그날밤 차천리로인이 해준 말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조선사람은 비록 셋이 모여도 단결하여 일제와 싸워야 한다고 한 로인의 말은 그후 우리의 투쟁에서 큰 교훈으로 되였다고 감회깊이 회고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우리의 선생은 역시 인민이였다고, 그래서 자신께서는 일군들을 만날 때마다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고 간곡하게 말하군 한다, 인민들속에 들어가는것은 보약을 먹는것과 같고 들어가지 않는것은 독약을 먹는것과 같다고 늘 강조하군 한다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주석님께 있어서 인민은 곧 하늘이였고 《하느님》이였다.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 천도교의 박인진도정이 위대한 주석님을 만나뵙고 천도교의 청수봉전을 어김없이 치르도록 하늘같은 도량을 베풀어주시는 주석님께 장군도 숭상하는 대상이 있는가고 외람된 질문을 올린적이 있었다.

그때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물론 나에게도 신처럼 숭상하는 대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이다, 나는 인민을 하느님처럼 여겨왔고 인민을 하느님처럼 섬겨오고있다, 나의 하느님은 다름아닌 인민이다, 세상에 인민대중처럼 전지전능하고 위력한 힘을 가진 존재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민위천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고있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하늘처럼 여기고 하늘로 섬기는 인민, 여기에는 위대한 주석님께서 지니신 인민사랑, 인민존중, 인민중시의 관점이 집약되여있다.

인민을 제일가는 스승으로 섬기시며 인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인민의 요구를 그대로 혁명의 요구로 받아들이시였기에 우리주석님께서는 언제나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시였으며 인민들의 희생적인 도움으로 사생결단의 위험한 고비들도 수없이 넘기시였다.

간고한 항일혁명투쟁의 나날 담대한 기지로 위대한 주석님을 적들의 추격으로부터 구원해드린 교하의 이름모를 아주머니와 원쑤들의 포위속에서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던 항일유격대를 구원해준 라자구등판의 마로인도,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우리 주석님께 자기는 장군님을 찾아간다고,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데 우리는 꼭 이긴다고 신심에 넘쳐 말씀드리던 법동농민과 반당종파분자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리던 나날에 우리는 수상님을 지지한다며 주석님께 힘을 드린 태성할머니도 다 우리 주석님께서 하늘처럼 떠받드신 평범한 인민의 한 사람들이였다.

이민위천의 좌우명을 지니시였기에 위대한 주석님께서는 시련과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언제나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였다.

농사문제가 걱정되시면 농민들속에 들어가시여 헌 멍석우에 스스럼없이 앉으시여 농사일을 의논하시였고 강재문제가 걸리면 제강소로동계급을 찾아가시여 나라사정을 툭 털어놓으시고 애국에 불타는 그들의 열의와 창조적지혜를 발동시켜 묘술을 찾아내군 하시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된 항일유격대식사업방법을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요구에 맞게 구현하고 발전시킨 유명한 청산리정신과 청산리방법도, 우리식의 사회주의적경제관리형태인 대안의 사업체계도 위대한 주석님께서 평범한 청산리농민들과 대안전기공장로동계급속에 들어가시여 몸소 창조하신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주석님께서 이민위천을 한생의 좌우명으로 간직하시고 한평생 인민들속에 계시며 인민에 힘에 의거하여 간고한 혁명의 길을 승리적으로 헤쳐오시였기에 이 땅우에 인민대중중심의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우실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