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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6-27 02:07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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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9(2010)년 6월 27일 로동신문

미국은 조선전쟁을 도발한 범죄적책임에서 절대로 벗어날수 없다

미제가 조선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한 때로부터 60년이 되였다. 력사는 가장 교활하고 악랄한 방법으로 조선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 미제의 죄행을 만천하에 낱낱이 고발하고있다.

6. 25-7. 27반미공동투쟁월간을 맞으며 미제의 조선전쟁도 발죄악을 단죄하는 목소리들이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 높이 울려나오고있다.

그런데 미국은 뻔뻔스럽게도 조선전쟁발발의 책임이 마치도 우리 공화국에 있는듯이 여론을 오도하고있다.

력사는 거울과 같다. 미제가 제아무리 조선전쟁도발의 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술책을 써도 전쟁방화자의 죄행과 정체는 절대로 감출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오래동안 세밀히 작성한 계획에 따라 리승만매국역도를 사촉하여 동족상쟁의 내란을 도발하고 우리 조국과 우리 인민을 반대하여 직접 무력간섭을 개시한 그 침략행동을 무엇으로써도 변명하지 못할것입니다.》

미제의 조선침략전쟁도발흉계는 남조선강점 첫날부터 꾸며졌다.

일찍부터 우리 나라를 아시아와 세계제패를 위한 군사적교두보로 정한 미국에 있어서 조선반도의 절반땅에 대한 지배는 그들이 바라는 전부가 아니였다.

제2차 세계대전후 아시아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인민민주주의혁명이 련이어 승리함으로써 세계민주력량이 급격히 장성강화되고있던 국제적환경은 미국으로 하여금 조선의 《지정학적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하였다.

미극동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나는 항상 조선을 무한한 가치가 있는 군사적전초기지로 인정하였다. 조선의 전지역을 정복하는것에 의하여 우리는 쏘베트씨비리와 남방을 련결하는 유일한 보급선을 산산이 짓부실수 있을것이며… 울라지보스또크와 싱가포르사이의 전지역을 지배할수 있을것이다. 그때에 가서는 우리들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란 아무데도 없게 될것이다.》라고 떠벌였다.

미제가 조선전쟁도발에 절실한 리해관계를 가진것은 저들이 직면한 심각한 경제위기와도 관련되여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막대한 리윤을 축적하였던 미국경제는 전후 심각한 공황에 처하게 되였다. 기업들이 무리로 파산되고 수백만명의 실업자대군이 생겨났다. 이것은 미국에서 심각한 사회정치적위기를 산생시켰다.

그로부터의 출로를 조선전쟁에서 찾은 미국은 전쟁을 통하여 군수독점체들에 《활력》을 부어주고 위기에 처한 경제를 구원할수 있다고 타산하였다.

조선전쟁도발을 기정사실화한 미국은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기 위한 전쟁준비를 미친듯이 다그쳤다.

미제는 무엇보다도 남조선괴뢰들에게 전쟁열을 고취하는데 신경을 썼다.

1949년 남조선주재 미국대사였던 무쵸는 괴뢰《국방부》장관과 괴뢰《내무부》장관을 불러다놓고 당신들뒤에는 미국이 있으니 용기를 내라, 북조선에 대한 공격의 시기가 하루라도 속히 오도록 힘써주기 바란다고 하면서 그들에게 북침바람을 불어넣었다.

미제는 남조선괴뢰군을 현대적전쟁수단들로 무장시켜 전쟁대포밥으로서의 능력을 키우는데도 많은 품을 들였다.

미국회가 공식발표한 문건에 의하더라도 미제는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남조선괴뢰군에 14만 5 000여정의 보총, 2 000여정의 기관총과 기관단총, 2 000여문의 포, 4 900여대의 차량, 79척의 함선 등을 넘겨주었다. 그리하여 미국의 전쟁장비와 수단들로 무장하고 미국식으로 훈련받은 남조선괴뢰군의 수는 1949년 9월에 이르러 10만명이상에 달하였다.

미제의 북침계획에 따라 남조선괴뢰군은 38°선지역에 공격형으로 배치되였으며 전쟁수행에 필요한 일체 군수물자와 장비들도 집결되였다.

미제는 미국제무기로 장비되고 훈련을 받은 남조선괴뢰군의 《림전태세》를 검증하고 《실전능력》을 키우기 위해 1947년부터 38°선이북지역에 대한 부단한 무장도발을 감행케 하여 예비적인 《시험전쟁》을 벌리게 하였다.

결과 38°선전역에서 감행된 남조선괴뢰군의 각종 무장도발행위들은 1949년 한해동안에만도 무려 2 617회에 달하였다.

1949년 7월 남조선강점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괴뢰군부우두머리들에게 《금번 단행할 북침은 멀지 않아 일으킬 내전을 위한 좋은 시험대이며… 적과 직접 조우함으로써 산지식을 얻을수 있는것이다.》라고 줴쳤다.

미제는 《시험전쟁》을 통하여 저들에게 유리한 전술적지대를 확보하고 그것을 거점으로 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적이고 전면적인 공격을 단행할것을 획책하였다.

그들은 괴뢰들을 전쟁에로 부추기면서 구일본군 참모성원들까지 망라시켜 《북벌》작전계획을 작성하고 전쟁발발시 취하여야 할 특별행동에 관한 《엔에스씨-68》전 략계획도 세워놓았다.

미국도서 《조선전쟁은 누가 일으켰는가》에 밝혀져있는것처럼 북침공격을 위한 미제의 군사작전계획은 《완전무결하게》 수립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공격준비는 1950년 5월에 일체 끝났다.

미제는 남조선괴뢰군의 전투준비를 다그치는것과 함께 남조선전역에서 비행장과 항만, 도로 등을 대대적으로 건설확장하였다. 미제의 발광적인 북침전쟁준비책동으로 남조선은 말그대로 거대한 군사기지로, 전쟁지대로 전변되였다.

미제는 조선전쟁도발준비를 완료하자 곧 실천에로 넘어갔다.

1950년 6월 17일 미국대통령 트루맨은 조선전쟁준비실태를 최종적으로 검토하고 공격개시지령을 주기 위해 호전광 덜레스를 남조선에 파견하였다.

트루맨의 《특명》을 받고 남조선에 기여들어 38°선을 시찰한 덜레스는 6월 18일 리승만역도에게 《북조선에서 먼저 <침입>했다는 역선전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하여 공격을 개시하라.》고 지시하였으며 다음날에는 괴뢰《국회》에 나타나 《미국은 남조선이 공산주의와 싸우는데 필요한 모든 정신적, 물질적지원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라고 력설하면서 괴뢰들을 전쟁도발에로 부추겼다.

그후 일본으로 날아간 덜레스는 도꾜에서 미극동군사령관 맥아더, 미국방장관 죤슨, 미합동참모본부의장 브랫들리와 마주앉아 조선전쟁을 도발하기 위한 방법과 절차 그리고 전쟁개시날자를 1950년 6월 25일로 한다는것을 확정하였다.

이 계획은 그후 미국대통령과 미합동참모본부, 국무성, 국방성우두머리들의 련석회의에서 합의되고 트루맨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비준되였다.

침략전쟁도발을 앞두고 기만과 위장공세를 벌리는것은 미제가 쓰는 상투적수법들중의 하나이다.

조선전쟁도발방법과 절차, 날자까지 확정한 미제는 전쟁도발에서 불의성을 보장하는것과 함께 전쟁도발의 책임을 우리 공화국에 넘겨 씌우기 위한 조건을 마련할 목적으로 전쟁전야에 전례없는 기만, 위장공세를 맹렬히 벌리였다.

조선전쟁도발을 주도한 트루맨은 1950년 6월 24일 가족과 함께 워싱톤을 떠나 주말휴식차로 미주리주의 자기 고향으로 떠났다고 광고하였으며 미국무장관도 주말휴식차로 려행하는 연극을 놀았다.

남조선강점 미군사고문단 단장 로버트는 미국본토로, 참모장 라인트는 일본 도꾜로 려행하는 광대극을 펼쳤다.

미국이 짜준 각본에 따라 리승만괴뢰도당은 1950년 6월초부터 실시해온 비상계엄령을 6월 24일 0시를 기하여 해제한다는것을 발표하였다. 그에 따라 어용수단들은 남조선군의 3분의 2가 《외출》하였다고 거짓나발을 불어댔다.

그러나 미극동군사령부와 남조선괴뢰군부의 우두머리들은 자기 위치를 차지하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마침내 전쟁호전광들이 기다리던 시각은 왔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은 선전포고도 없이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불의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하였다.

교활한 미제는 미극동군사령부가 남조선괴뢰군 《참모총장》을 통하여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전면적인 무력침공을 개시할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게 하였다.

이에 대해 미극동군사령부에서 참모로 근무한 에이다는 《조선전쟁은 일본에 있는 미군총사령부의 직접적명령에 의하여 남조선군이 개시하였다.》라고 증언하였다.

남조선괴뢰해군 《참모총장》이였던 리룡운도 《전쟁은 사실 우리들에 의하여, 남조선으로부터의 도발로써 시작되였다.》라고 실토하였다.

미제는 남조선괴뢰군이 38°선을 넘어서기 바쁘게 대기상태에 두었던 미군무력을 신속히 조선전쟁에 투입하였다.

6월 25일 미공군비행대들은 우리 인민군대를 표적으로 하여 군사행동을 개시하고 다음날 낮부터는 공화국북반부지역들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감행하였으며 그와 동시에 미제7함대도 조선해역에서 군사작전을 시작하였다.

일본력사가 호라 도미오는 자기의 저서 《조선전쟁》에서 《미극동군사령관이였던 맥아더는 전쟁이 일어난 날인 1950년 6월 25일에 벌써 일본기지에 있던 전투폭격기들을 조선전쟁에 출격시켰다.》라고 서술하였다.

력사적사실과 자료들이 보여주는것처럼 조선전쟁은 철두철미 미국이 사전에 준비하여 극비에 붙인 전쟁계획에 따라 감행된 부정의의 전쟁, 침략전쟁이였다.

미제가 감행한 3년간의 조선전쟁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을 당하였으며 3천리조국강토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성한것 없는 재더미로 변하였다.

미제야말로 우리 인민에게 천추만대를 두고도 다 갚지 못할 엄청난 죄악을 저지른 불구대천의 원쑤이다.

오늘 미제는 지난 조선전쟁에서 당한 쓰디쓴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제2의 조선전쟁을 도발하려고 미쳐날뛰고있다.

그러나 미국은 오산하고있다. 우리 군대와 인민은 미제의 일거일동을 높은 경각성을 가지고 예리하게 주시하고있으며 불굴의 기상과 승리의 신심에 넘쳐 침략자들을 단매에 쳐부실 만단의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있다.

만약 미제가 또다시 조선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단다면 우리 군대와 인민은 침략자들과 그들의 아성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고 조국통일의 력사적위업을 성취하고야말것이다.

서남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