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星期五
첫페지 | 총련합회활동 | 잡지 | 혁명령도업적 | 민족의 숙원 통일 | 심양모란예술학교 | 공보
사이트 내 전체검색
작성일 : 11-04-11 03:27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626   추천 : 0  

조선동해의 명칭은 가장 이른 시기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명명되여 수천년동안 《동해》로 불리워왔다.하지만 일본은 명치유신이후 조선에 대한 일본의 침략야망이 증대되고 조선강점정책이 단계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그와 보조를 같이하여 조선동해를 《일본해》로 외곡날조한 다음 파렴치하게도 1929년에는 식민지종주국의 지위를 악용하여 조선동해를 《일본해》이름으로 국제수로기구에 등록하였다.

이렇듯 조선동해의 《일본해》표기는 일제의 조선강점정책과 제국주의적팽창책동의 직접적인 범죄적산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 일본은 미제의 침략적인 대조선정책에 편승하여 조선에 대한 식민지통치의 사죄와 배상은커녕 줄곧 반공화국적대시정책을 일삼으면서 령토적야망에 들떠 독도강탈책동을 추구하는 한편 조선동해의 《일본해》표기를 한사코 고집해나서고있다.새 세기에 들어와서도 일본은 《일본해》표기를 주장하면서 막대한 자금까지 들이밀어 일본외무성과 각국 주재 일본대사관들은 물론 각종 출판물들과 방송수단들,인터네트까지 동원하여 《일본해》명칭을 국제사회에 공인시켜보려고 집요하게 책동하고있다.

지어는 《조선동해》명칭대신 《일본해》표기를 주장하는 12페지분량의 소책자를 만들어 미국의 주요언론들과 단체들,여러 국제기구들을 대상으로 맹렬한 선전활동을 벌리는 한편 유엔지명표준화회의와 유엔지명전문가회의,바다명칭에 대한 여러 국제학술회의와 학술토론회들에서 《일본해》표기를 고집하고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는 조선동해명칭의 력사적기원과 지도 및 지명명명의 국제적관례 등을 통해 본 《일본해》표기의 부당성을 까밝히며 그 반동성을 규탄하는 글을 발표하게 된다.


1.《동해》는 시원적으로 가장 오랜 조선동해의 전통적인 이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모든 과학,교육,문화기관들을 독점하고 그것을 리용하여 조선인민의 민족적전통,민족어,민족적자각과 긍지를 말살하려 하였던것입니다.》

항해술이 높았던 우리 조선사람들은 일찍부터 조선동해를 개척하고 거기에로 적극 진출하였으며 이 과정에 동해에 있는 울릉도와 독도를 령유하였고 일본렬도에도 진출하였다.

지리적으로 동해는 조선반도의 동쪽에 위치해있고 조선반도와 일본렬도사이에 놓여있으며 동해남부는 조선해협을 통해 태평양과 련결되여있다.

《동해》는 시원적으로 가장 이른 시기 조선사람들에 의하여 명명되였고 수천년동안 불리워오면서 사용된 조선의 고유한 바다이름이다.

조선동해를 둘러싸고있는 대륙연안과 섬들에는 조선민족을 비롯하여 여러 민족들이 살고있었지만 제일먼저 이 지역의 바다를 개척하고 바다이름을 명명한 사람들은 바로 조선사람,조선민족이였다.

조선사람들은 인류문명의 첫 시기인 고대시기부터 조선동해를 개척하면서 울릉도에도 진출하여 고인돌무덤을 남기였고 6세기초이전에 울릉도와 독도를 통치령역으로 하는 우산국이라는 나라까지 형성하였으며 나아가서 일본렬도에 대대적으로 진출하여 일본의 력사발전에 거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 과정에 우리 선조들은 동해에 대한 깊은 지식과 리해를 가지게 되였으며 없던 바다이름도 남먼저 《동해》로 명명하였다.

삼국이전시기부터 쓰이기 시작한 《동해》명칭은 그후 리조말기에 이르기까지 고착되여 일관하게 쓰이여왔다.그런데 19세기에 들어와서 비로소 동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기 시작한 일본은 해외팽창야망으로부터 조선동해대신 《일본해》라는 이름을 내걸고 세계지도학계를 극심하게 혼란시키였다.《일본해》라는것은 아무런 력사적근거와 정통성도 없이 근대에 와서 일본이 주장해낸 바다이름이다.

잘 알려져있는것처럼 모든 지명의 고착은 일정한 력사적유래와 연혁 그리고 정통성에 기초하여야 한다.깊은 력사적뿌리에 기초한 지명만이 공명정대하게 세계의 지도에 오를수 있다.

《동해》명칭은 깊고도 오랜 력사와 합리적인 근거,관례상 정통성을 가지고있지만 반면에 《일본해》명칭은 력사도 정통성도 없고 아무런 타당성도 없다.

조선의 동해바다를 제일먼저 개척하고 《동해》라고 명명한 사람은 일본사람도 녀진족도 아닌 바로 조선사람이였다.그것은 《삼국사기》,《삼국유사》를 비롯한 민족고전들에 명백히 기록된 력사적명칭이였다.

우리 나라의 가장 오래된 력사책인 《삼국사기》(전 50권)는 고려중엽의 대관료이며 문호인 김부식(1075-1151)이 당시까지 전해오는 고구려의 《신집》,《구삼국사》 등의 오랜 력사기록들을 추려모아 1145년에 편찬한 책이다.비록 도서가 고려시기에 재편찬되였지만 도서가 가지는 사료적가치와 신빙성은 대단히 높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 동명왕조에는 고구려의 건국과 관련한 다음과 같은 건국설화가 실려있다.고구려의 선행한 나라인 부여국의 해부루왕의 신하 아란불이 꿈에서 하늘(천제)의 계시를 받았는데 이르기를 《장차 나의 자손으로 하여금 여기에 나라를 세우게 하니 너는 그곳을 피하라.〈동해〉의 해변가에 가섭원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는데 그 땅은 기름지고 오곡재배에 마땅하니 가히 수도로 정할만 하다.》고 하였다.드디여 아란불이 임금에게 권하여 수도를 저곳(가섭원)에 옮기였다.그리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삼국사기》권 13 고구려본기,《삼국유사》권 1 기이 2 동부여)

고려시기의 관료이며 문호인 리규보(1168-1241)는 동명왕의 건국과정을 기록한 《구삼국사》의 내용을 시로 읊었는데 (동명왕시편)여기에도 명문으로 동부여건국과 관련한 개소의 바다는 《동해》라고 명기되여있다.

《삼국사기》와 리규보의 동명왕시편은 모두 동부여국의 건국설화이자 고구려의 건국설화이다.고구려의 건국은 B.C.277년이며 《삼국사기》가 끌어내린 잘못된 년대로 친다 해도 B.C.37년이다.다시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 수백년전에 우리 조상들은 오늘의 조선동해를 《동해》라고 불렀던것이다.이것을 력사기록이 증명해주고있다.물론 우리 선조들은 동부여나 고구려건국이전시기에도 《동해》라고 불러왔다.

《삼국사기》에는 47년의 일이라면서 《동해사람 고주리가 고래를 바쳤다.》는 기사와 107년의 일로서 《동해골의 수(책임자)가 붉은 표범을 바쳤다.》는 기사 그리고 245년에 《동해사람이 미녀를 바쳤다.》고 하는 기사 등 10여개소에서 동해관련 기사를 실었다.

동해표기는 《삼국사기》뿐아니라 《삼국유사》에도 실려있다.《삼국유사》는 13세기 고려의 중 일연(1206-1289)이 쓴 력사책으로서 《삼국사기》에서 루락된 귀중한 자료들이 많다.이 《삼국유사》에 157년의 일이라면서 신라의 연오랑과 세오녀가 왜땅에 갔다는 기사내용을 실었는데 여기에서 《삼국유사》는 《동해바다가에 연오랑과 세오녀의 부부가 살고있었다.》고 이야기의 서두를 뗐다.이밖에도 《삼국유사》의 10여곳에 동해관련 기사가 실려있다.(《삼국유사》권1 기이 2)

《동해》표기는 상기 고문헌자료뿐아니라 당시의 조선사람들이 직접 바위돌에 새긴 금석문자료에도 있다.

광개토왕릉비의 비문 제3면 제8행에 《동해고국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는데 《동해고국연》이란 구절은 광개토왕릉비문에서 묘지기연호(호수)를 밝힌 단락에 있다.

광개토왕릉비는 414년 광개토왕의 맏아들 고거련이 세운것으로서 문헌기록뿐아니라 당대사람이 직접 써서 새긴 금석문들도 고구려사람들이 나라의 동쪽바다를 《동해》라고 불러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있다.우리는 고구려사람들이 직접 만들어 새긴 광개토왕릉비문의 《동해》표기를 《옛날 동해룡왕의 딸이 속병을 앓았는데…》하며 시작되는 고구려의 《토끼와 거부기이야기》와도 결부시켜보아야 할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동해바다를 개척정복하였다는 사실은 일본렬도의 동해연안에 남아 전해오는 고대조선의 유적유물의 분포와 옛 문헌자료들을 통하여서도 엿볼수 있다.조선에서 일본렬도에로의 진출이 동해바다를 개척정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리치이다.이즈모(시마네현)와 호끼(돗또리현)그리고 노또반도 등지에 고구려와 가야,신라시기의 유적유물이 적지 않게 분포되여있다는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이렇게 조선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조선의 동해를 개척하고 자기의 문화를 일본렬도에까지 전파하였다.우의 《연오랑과 세오녀》이야기는 일찌기 신라사람들도 조선동해를 개척하면서 일본렬도에로 건너간 내용을 생동하게 전하고있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동해》라는 바다명칭은 수천년전 적어도 2천 수백년전부터 우리 나라의 고대국가,고대조선사람들에 의하여 호칭되여왔으며 삼국시기에 와서도 고구려와 신라사람들에 의해 《동해》라고 불리워왔다는 사실을 력력히 확증해주고있다.

원래 《동해》라는 명칭은 나라 (조선)의 동쪽에 있는 바다라는 지리적개념이 그대로 지명화(바다이름화)된것이다.동해와 대칭되는 반도의 서쪽에 있는 바다를 《서해》라는 명칭으로 부른것도 마찬가지이다.

《삼국사기》(권 28 백제본기)에 의하면 백제가 망할 당시 《왕도의 우물물이 피색으로 되였고 서해해변가에 작은 물고기들이 무수히 죽었는데 백성들이 다 먹지 못하였다.》고 하였다.백제땅을 차지한 신라도 백제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라의 서쪽바다를 《서해》라고 불렀던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불러오던 조선의 《동해》,《서해》명칭은 고대시기와 삼국시기에 이어 중세기 전기간에 걸쳐 사용되여왔다.이에 대하여서는 《고려사》와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증보문헌비고》,력대 《리조실록》 등 관찬력사지리책들에 명문으로 한결같이 《동해》로 표기한것을 통해서도 여실히 확증된다.

17세기의 실학자 리수광은 자기의 저서 《지봉류설》에서 울릉도,삼봉도가 《동해가운데 있다.》고 하였고 18세기 중엽의 실학자 리중환도 《택리지》에서 령동9읍이 《모두 동해상에 있다.》고 하였으며 특히 1908년에 편찬된 《증보문헌비고》에서는 《동해》표기가 여러곳에 나오고있을뿐아니라 반도의 세면의 바다를 각기 《동해》,《서해》,《남해》로 명기하고 독자적인 항목으로 다루고있다.

지도자료를 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16세기에 편찬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려있는 《팔도총도》에는 서해,남해와 함께 동해가 명기되여있으며 18세기말의 지도인 《조선일본류뀨국도》에도 동해가 정확한 위치에 표기되여있다.

이와 반면에 《일본해》표기는 《동해》표기가 나온 때로부터 수천년이 지난 후에 쓰이였으나 그나마도 처음에는 오늘의 조선동해의 명칭이 아니라 태평양연안의 바다에 대한 호칭이였다.애당초 《일본》이라는 국호자체가 7세기에 와서야 생겨났던것이다.

우리 나라의 《삼국사기》와 중국의 력대 력사책들에는 일본렬도를 가리켜 《왜》라고 불렀으며 왜땅에서 사는 사람들을 《왜인》이라고 불러왔다.일본렬도에 사는 주민들이 6~7세기 야마또통일국가를 형성한 다음에도 오래동안 《왜》 또는 《왜국》이라고 호칭하였다.그러다가 670년에 와서야 비로소 왜국을 《일본》이라고 고쳐불렀다.이에 대하여 《삼국사기》(권6 신라본기 문무왕 10년)에서는 《왜국이 국호를 일본으로 고쳤다.스스로 말하기를 해가 가까이 솟는 곳에 있기때문에 그렇게 달았다.》고 하였다.하지만 중국의 력사책 《구당서》(동이 왜국전)에는 《일본국이란 왜국의 별종이다.그 나라가 해가까이 있다고 하여 일본이라고 달았다고 하며 혹은 말하기를 〈왜국이란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제스스로 미워하여 이름을 고쳐 일본이라고 하였다.〉고도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알수 있는것처럼 《일본》이란 이름이 세상에 나온것은 고작해야 670년 즉 7세기 후반기부터라는 사실이다.반만년전의 고조선은 물론 그 썩 후의 고구려(고려)와 대비해보아도 그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670년에 비록 《왜》대신 《일본》이라고 하였으나 우리 나라와 중국에서는 의연 《왜》 또는 《왜인》이라고 불렀으며 언제한번 온전하게 《일본》이라고 부른적이 없었다.력사에 《왜구》,《임진왜란》이라고 부른것이 그러한 실례이다.

하물며 《일본해》란 이름이 력사에 등장한것도 19세기 초엽에 와서부터였으며 그것도 대상이 오늘의 조선동해가 아니라 일본렬도의 태평양연안바다였다.

1727년 네데를란드사람인 켐페르 등이 만든 일본지도와 1752년에 제작된 베링의 일본지도에서는 일본렬도동쪽의 태평양연해를 《일본해》로,일본렬도서쪽의 조선동해지역을 《조선해》로 표기해놓았다.그리고 1942년에 출판된 도서 《대일본해》에서는 《일본해》가 태평양연안쪽에 표기된 15점의 지도를 소개하면서 에도막부시기에 일본렬도의 동쪽바다를 《대일본해》,《일본해》,《일본동해》로 표기하였고 《오늘의 〈일본해〉(즉 조선동해)를 명치초기까지만 해도 〈조선해〉로 표기하는것이 류행》이였다고 쓰고있다.명치초기란 1868년부터 1870년대사이를 말한다.이것은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동해를 조선의 바다로,일본의 바다를 태평양쪽 연안으로 인식하고있던 사정과 관련되여있었다.


2.조선동해의 《일본해》표기는 일제의 조선강점정책과 식민지통치의 범죄적산물


근대에 들어와서 유미자본주의렬강들의 조선동해에 대한 진출이 강화되면서 조선동해는 《조선해》로 널리 통용되게 되였다.

일본의 천문학자 다까하시 가게야스(1785-1829년)는 1809년에 만든 《일본변계략도》라는 지도에서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였고 가쯔라가와 호슈(1751-1809년)가 1794년에 작성한 《아시아전도》에서도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였다.뿐아니라 제작당시 일본에서 가장 우수한 세계지도라고 평가된 《신제여지전도》에서도 조선반도의 동쪽 즉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밝히였다.

1810년 도꾸가와막부의 위임에 따라 유럽지도에 기초하여 만든 동판지도인 《신정만국전도》에서도 조선동해를 《조선해》로,태평양의 일본렬도쪽 바다를 《대일본해》로 표기하였다.또한 1854년에 외국지도를 참고로 하여 제작한 《대일본연해요강전도》와 일본의 지리학자 누마지리 보꾸센(1774-1856년)이 만든 《만국전도원기》라는 지구의에서도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표기하였다.

일본뿐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도 우리 조선동해를 《동해》 또는 《조선해》로 표기하여왔다.

물론 1245년 이딸리아의 카르피니가 쓴 《몽골견문기》에 있는 《바랜드지도》와 1507년 마른왈드 심뮐리가 만든 《세계지도》와 같이 우리 나라의 조선동해를 《동양해》로 표기한 례도 있다.그것은 모름지기 중국의 동남해의 바다도 《동해》라고 한데로부터 그것과 구분하기 위하여 《동양해》라고 표기한것 같다.

그러나 17세기초경부터 유럽을 비롯한 세계는 조선동해를 점차 《조선해》 또는 《고려해》라고 부르게 되였다.

1615년 뽀르뚜갈에서 만든 《아시아지도》를 비롯하여 20세기전까지의 이딸리아,영국,프랑스,네데를란드,로씨야,미국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판된 지도가 다 《조선해》 또는 《동방해》 등으로 표기하였다.

지도뿐아니라 유명한 스위프트의 장편소설 《갈리버려행기》에도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밝히였고 1771년에 영국에서 편찬된 《대영백과사전》에도 조선동해를 《조선해》로 밝히였다.

본래 일본에서는 명치유신이 있은 이후인 1870년에 처음으로 수로사업을 시작하였고 그에 앞선 중세기에는 에도막부시기인 1786년 모가미 도꾸나이(1754-1836년)에 의한 꾸릴섬,싸할린에 대한 탐험이 있었고 1808년에는 마미야 린조(1775-1844년)에 의한 싸할린과 연해주에 대한 탐험에 기초하여 이른바 마미야해협을 발견한데 지나지 않는다.따라서 조선동해에 대한 깊은 지식이 없던 일본인들은 관습적으로 종전호칭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조선해》라고 써왔다.

그러나 명치유신이후 조선에 대한 일제의 침략야망이 증대되고 조선강점정책이 단계적으로 로골화됨에 따라 그와 보조를 같이하면서 《일본해》는 점차 서쪽으로 옮겨지게 되였다.

알려진바와 같이 일본의 조선침략은 《정한론》이 대두한 19세기 후반기,《강화도조약》이후 시작되여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로일전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섰으며 1905년 《을사5조약》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화와 1910년 국토의 완전병합에로 이어지게 되였다.

일본의 동해에 대한 표기도 이에 따라 19세기말이후 《일본서해》,《조선일본량해》,《일본해》로 바뀌여갔으며 국호표기도 전통적인 C코레아로부터 K코레아로 바뀌여가다가 1910년의 K코레아의 단일화에 이르게 되였고 우리의 신성한 령토인 독도도 《다께시마》로 둔갑되여 《을사5조약》이 날조된 해인 1905년에 일본령토에로의 편입이 결정되게 되였다.

일본의 고지도들에서 전통화되여있던 《조선해》표기를 《일본해》로 외곡하기 시작한것이 일제의 조선침략의 개시기와 일치하고있으며 일본의 모든 지도,출판물들에서 《조선해》표기가 사라지고 《일본해》단독표기만 허용된 시기가 일제의 조선강점시기와 일치하고있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군국주의자들자신이 인정하고있다.

1893년에 발간된 《일본수산잡지》에서 군국주의자 세끼자와 아끼기요는 《이미 〈일본해〉라는 공식명칭을 가진 이상 그(수역)의 해상주권도 우리(일본)가 점유한것》이라고 하면서 조선동해에로의 적극적인 진출을 고창하였으며 태평양전쟁시기 일본이 태평양의 넓은 지역을 장악하게 됨에 따라 일본정계와 군부에서는 태평양을 《대일본해》로 개칭하자는 설이 나오고 《태평양,인디아양을 제압하여 〈신일본해〉로 하는것도 가능》하다고 떠들었다.

이것은 바로 조선동해가 《일본해》로 되게 된 경위와 진의도가 무엇인가를 명백히 보여주고있다.

더우기 일제는 1920년대에 들어와 바다명칭의 표준화사업이 국제적인 범위에서 벌어지게 되자 식민지종주국의 지위를 리용하여 조선동해의 명칭을 《일본해》로 공식 등록함으로써 천만부당하게도 《일본해》가 조선동해의 국제적표준지명으로 둔갑하는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되였다.

일제의 조선강점과 식민지통치가 완전한 비법이고 범죄로 되는만큼 《일본해》표기의 《적법성》은 더 론의할 여지조차 없다.

일제의 《일본해》표기책동,《동해》표기말살책동은 결국 동해의 해상주권을 탈취하기 위한 계획적인 침략행위이며 전조선의 영구지배를 전제로 한 식민주의적팽창정책의 범죄적인 산물이였다.


3.《조선동해》는 력사적정통성과 국제적관례에 부합되는 가장 정당한 명칭


조선동해의 명칭은 그 력사적기원과 정통성,국제적관례의 견지에서 볼 때 마땅히 《조선동해》로 명명되여야 한다.

바다이름명명의 국제적관례는 사회력사발전과정에 제기되는 인류의 지향과 념원을 반영하여 이루어진다.때문에 이 국제적관례와 기준을 존중하고 따르는것은 나라와 민족들이 지켜야 할 의무로,준칙으로 되고있다.

바다이름명명에는 그러한 국제적관례가 있다.

바다이름명명의 국제적관례에 관통되여있는 기본원리는 륙지에 비하여 늦게 인식되고 파악된 바다들에 대한 리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 축적된 륙지에 대한 지리적지식에 기초하여 바다이름을 짓는것이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대륙기슭에 있는 바다(연안해)들은 그 주변의 대륙쪽에 있는 지리적대상들가운데서 이미 오래전에 세상에 널리 알려진 대상의 지명들을 그 이름으로 하며 섬들사이에 있는 바다들은 주변의 여러 섬들가운데서 역시 가장 유명한것들의 이름으로 명명하는것이다.만일 바다주변에 그러한 기존지명이 없는 경우에는 바다의 특성이나 바다를 처음 개척한 탐험가들의 이름을 반영하여 바다이름을 짓기도 하였다.

60여개가 되는 세계의 바다들에 대한 이름은 거의나 다 이런 관례에 의하여 명명되였다.세계에는 우리 나라 동해와 같은 연안해가 18개가 있는데 그중 12개가 《중국동해》,《오호쯔크해》,《아라비아해》,《동씨비리해》와 같이 대륙쪽의 유명하였던 지명들에서 유래하였고 4개는 《베링그해》나 《산호해》와 같이 바다를 개척한 탐험가들의 이름이나 바다의 특성에서 유래한것이며 섬들의 이름에서 유래한것은 2개밖에 안된다.그 2개중 하나인 까나리아해는 동쪽에 있는 아프리카대륙부분이 사막으로 되여있기때문에 바다이름으로 리용할 지명이 없었다.때문에 할수없이 대륙쪽보다 먼저 개척된 까나리아제도의 이름에서 유래하게 되였던것이다.

《조선동해》는 이러한 국제적관례에 따라 바다주변 대륙쪽의 지명에서 유래된것이며 구체적으로는 바다주변의 기존지명들가운데서 먼 옛날부터 세상에 널리 알려진 우리 나라 이름과 결부되여 명명된 지명이다.

일본은 력사적으로 오랜 기간 많은 세상사람들이 그 존재여부자체도 모르고있던 섬나라로서 《일본해》라는 지명은 바다이름명명의 이런 국제적관례를 완전히 무시한 부당하며 부적절한것이다.

현시기 지명발전의 세계적추세 역시 《조선동해》표기의 정당성과 《일본해》표기의 부당성을 명명백백히 밝혀주고있다.

지난날 제국주의자들이 침략한 나라와 지역들에서 만들어낸 지명들은 해당 지역 민족들의 지향과 관습을 무시한 부당한 성격을 띤것들이였다.일제가 과거 조선지도에 《일본》이라고 표기한것은 그 대표적인 실례로 된다.

자주성의 시대에서 그러한 부당한 지명들을 없애고 본래의 지명을 되살려 쓰거나 새로운 현실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켜 명명하는것은 현시기 지명발전의 세계적추세로 되고있다.다른 나라 민족의 자주성을 유린하고 오랜 민족전통과 관습을 무시하면서 침략자의 리익만을 옹호하는 무단행위는 절대로 허용될수 없다.

《조선동해》는 이러한 세계적추세에 맞게 그 력사지리적의미와 오늘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여 명명한 원칙적이고도 공명정대한 지명이다.반면에 《일본해》는 제국주의자들이 팽창주의적야욕에서 만들어낸 부당한 지명들중에서도 대표적인 전형이다.때문에 《일본해》표기를 없애치우고 《조선동해》를 국제적인 표준지명으로 하자는 우리의 주장은 백번 정당한것이며 《일본해》표기를 고집하는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반동적인 억지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앞에서 본바와 같이 조선반도와 일본렬도사이에 있는 바다는 력사적으로 《동해》라고 불리워왔다.다시말하여 그것은 력사적으로나 기원적으로 조선의 동해였다.그러므로 《조선동해》명칭에 력사적정통성이 있다는것은 너무나도 명백하다.이와 반면에 《일본해》라는 명칭은 기원적으로나 정통성측면에서 볼 때 력사적정통성이 완전히 결여된 부당한 표기일뿐아니라 일제의 죄많은 과거사가 응결된 범죄적인 명칭이다.따라서 현시기에 와서 《일본해》표기를 계속 고집하는것은 본질에 있어서 과거 일본제국주의의 팽창주의적《대동아공영권》망상을 실현하려는 기도로밖에 달리 해석될수 없다.

일본은 파렴치한 력사지명외곡행위를 그만두며 과거 일제의 조선강점정책의 범죄적산물인 《일본해》표기책동을 당장 걷어치워야 한다.과거범죄에 대한 성근한 반성과 사죄만이 일본의 진정한 재생과 공존,공영의 길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력사학학회

주체100(2011)년 4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