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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16 12:2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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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승 (통일뉴스 전문위원)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는 패권국에 의해서만 극복된다’
19세기 말 제국주의 시대 이래 서구의 지배적인 세계관
 
20세기가 전쟁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앞서 내다본 것은 ‘제국주의론’(1916)을 쓴 이의 혜안이었다. 그 예견이 들어맞아 20세기 전반에 두 번의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후반에도 크고 작은 전쟁이 잇달았다. 가히 20세기는 ‘전쟁의 세기’(게이브리얼 콜크 등)란 이름을 얻을 만했다. 이 한 세기 동안에 1억5000만 명이 목숨을 빼앗긴 것으로 어림잡는데, 최소로 잡아 그러하단다. 불구가 된 사람, 삶의 터전을 떠나 난민이 된 사람, 가족을 잃고 통한의 여생을 살았거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수는 어림으로도 잡히지 않고 있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인간의 세계에서 왜 이런 살육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어느 동물도 먹이나 영역을 놓고 다툴 때 말고는 제 동종을 죽이기 위해 발톱을 세우지 않는다. 먹이사슬의 계열 안에서 다른 종을 잡아먹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행위일 뿐이다. 인간에게도 수렵이 중요한 생존수단이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생긴 육식 습성이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어 생존본능에서만 보면 맹수 같은 짐승과 크게 다를 것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과 동물의 이런 유사성에서 인간이 전쟁을 하는 근거를 찾고자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자연상태’의 인간을 동물과 마찬가지로 야성(맹수성)을 본성으로 가진 존재로 생각했다.
 
그에 따르면 자연상태에선 인간은 만인이 만인에게 적이고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만인의 만인과의 투쟁에선 어느 누구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만인이 모두 서로 죽이고 죽는 적이기 때문이다. 처음 맞선 사람과의 투쟁에서 요행히 이긴다 해도 한 순간만 죽음을 모면한 것일 뿐, 다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도전을 받게 된다. 죽음이 두렵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자연상태의 인간은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여서 누구나 항상 죽음이라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다는 것, 이런 ‘상호적 공포’가 자연상태를 지양하여 국가를 세워야 하는 동기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이 17세기 서양에 있었다. 영국인 토머스 홉스이다. 물론 그가 말한 자연상태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국가 성립의 동기로 도입한 이론적 가설이지만, 그런 가설에 대한 영감을 준 것은 원초적인 인간의 삶이기보다는 무한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한 당시의 사회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인류역사의 어느 시기에도 만인이 만인과 투쟁한 적은 없다. 인류사의 초기라면 더구나 맨손뿐인 혼자의 힘보다 씨족이든 부족이든 모두 힘을 보태는 것이 살아남는데 유리했을 것이다. 만인의 만인과의 투쟁은 원시적인 자연상태가 아니라 문명화한 자연상태, 전통적인 공동체가 해체되고 고립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생존을 위해선 스스로의 힘밖에 기댈 곳이 없게 된 사회에서 나타난 삶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달리 말해서 이윤을 얻기 위해서라면 세계의 누구와도 경쟁해야 하는 무한경쟁 시대의 삶의 모습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종종 법이나 권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 되면 인간이 서로 늑대가 된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을 조사한 결과는 전혀 달랐다. 20세기에 발생한 몇몇 끔찍했던 자연재난들 뒤, 법과 권력의 기능이 완전히 멈춘 상황에서 사람들이 보인 행동은 통념과는 달리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던 경이로운 이타성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폐허의 무법지대에서 사람들은 살인이나 강도 절도와 같은 ‘야수성’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따뜻한 연대와 상호부조의 꽃을 피웠다.(레베카 솔니트: 지옥에 세운 낙원-재난 속에서 움튼 특별한 공동체) 인간은 무법상태(자연상태)에선 저마다 제 잇속만 챙기는 이기적 본성을 드러낸다는 통념이 실은 자연상태 이론이 심어준 편견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실례라 할 수 있다.
 
아무튼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미개한(무법의) 자연상태가 개인들로부터 자연권을 위임받은 국가의 공적인 권력에 의해 지양된다는 생각은, 지난 몇 백 년 동안 약간의 차이를 가지면서도 서구 사회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그러나 국가라는 공적인 권력에 의해 지양된 자연상태는 결코 화해와 평화의 상태로 승화될 수 없었다. 더구나 홉스의 사상적 후예들에 의해 투쟁 상태로서의 자연상태의 주체가 개인에서 국가(국민)로 되면서 국가들 사이의 자연사태 (전쟁상태)를 극복하는 과제가 새로이 제기되고, 18~20세기에 걸쳐 이 과제를 놓고 진지한 ‘이론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떤 이는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지속적인 평화상태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들의 연방인 ‘세계공화국’이란 모델을 인류의 역사가 도달해야 할 이념형으로 내놓았고, 어떤 이는 세계사는 여러 국가들이 서로 다투는 법정(세계법정)이라면서, 그 법정에서 세계사의 이념이 ‘이성의 간지’에 매개되는(조종받는) ‘세계사적 국가’(패권국가)에 의해서만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전자가 말하자면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를 ‘연방 계약’ 같은 것을 맺어 극복해야 한다는 이상론적인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후자의 주장은 국가들 사이의 자연상태는 패권적인 힘을 가진 국가의 권력의지를 통해서만 극복된다는 것으로 19세기말 제국주의 시대 이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2003년에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의 대표 논객인 로버트 케이건이란 사람도 후자 같은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행동을 비판한 유럽의 정치가나 지식인들을 ‘포스트 모던의 낙원’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비웃으면서, 세계의 안전과 평화는 미국처럼 군사력(하드 파워)이 강한 나라에 의해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했다. 군사력이 강한 패권국의 총구에서 세계의 안정과 평화가 나온다는 생각인 것이다. 누군가 말한 ‘패권 안정론’이다. 실행되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시리아에 대한 군사행동 구상에서도 홉스 이래 서구 세계관의 일관성을 엿볼 수 있다.(홉스의 후예 가운데는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 사상에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주고 나치정권의 승리를 도운 저명한 공법학자 카를 슈미트 같은 사람도 있다.)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복수의 관점에서 존재할 때만 세계가 될 수 있다고들 말한다. 민족이든 국가든 저마다 독자적이고 고유한 문화와 세계관을 갖고 살아가는 인간의 집단체인데, 그러한 다양성과 복수성을 적대 상태로만 보고 동일화하려 하거나, 또는 중심으로부터 이탈한 변방의 모난 귀퉁이로만 보고 도려내려고 하는 것은 결국 세계를 파괴하는 짓이 된다. 홉스의 자연상태론에 뿌리를 두고 있는 패권 안정론이 오늘날 국가들 사이의 전쟁을 막고 세계를 안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패권국의 군사개입을 정당화하고, 그래서 복수성으로서의 세계를 파괴하게 된다면 ‘세계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에서 종언’(한나 아렌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전노에게 화폐가 축장의 목적으로 되듯이
무기가 전쟁의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기도
 
또 하나, 오늘날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는 요인으로 지목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무기의 고성능화와 상품화, 그리고 무기의 위상 변화이다.
 
고래로 전쟁의 역사는 곧 무기의 역사였다. 전쟁의 발생과 무기의 발명은 연대가 시초부터 같다. 인간의 첫 무기인 활과 화살 칼과 창은 전쟁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조건의 발생에 따라 발명된 것이다.
 
그 무기가 전쟁의 세기란 이름에 걸맞게 20세기에 들어서 인명 살상과 파괴의 성능이 너무 커졌다. 이젠 전쟁이 일어나면 어느 나라도 가능한 한 이들 무기를 사용하려 할 것이고, 그 결과는 참혹할 것임에 틀림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말할 것 없고, 드레스덴이나 도쿄 등에서도 세계는 현대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발칸전쟁 이라크전쟁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전쟁은 네이팜탄 고엽제 열화우라늄탄 같은 무차별 살상 무기를 사용한 역사상 가장 ‘비문명적인 방법’으로 싸운 전쟁이란 비판을 받기에 족하다.
 
이전 시기의 전쟁이었다면 당연히 전투 현장에서 병사들의 살상이 많이 발생하고 후방에 있는 민간인들의 살상은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무기들의 등장으로 현대 전쟁에선 후방에 있는 비전투 민간인의 희생이 훨씬 더 많아졌다. 그것도 전투 중의 실수나 우발사고가 아니라, 거의 모든 희생이 전쟁 지휘부가 의도적으로 기획한 작전에서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비전투 민간인을 의도적으로 살상한 것은 이전의 전쟁에서 신화로나마 남아있던 인륜적 기준이 송두리째 무너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게다가 핵폭탄 같은 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은 미래의 전쟁이 한 도시의 참화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파멸 만물의 종말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전 세계를 향해 예고했다.
 
인류는 그동안 파괴하는 능력과 건설하는 능력의 균형을 이루면서 장기적으로는 전자보다 후자가 우세하여 숱한 전쟁을 치르면서도 세계가 재건되고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핵융합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젠 인류가 하기에 따라선 건설 능력과 파괴 능력의 우열이 역전될 수도 있게 되었다. 만약이란 단서를 붙인 가정이긴 하지만 앞으로 전면적인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세계는 재건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그동안 인류가 이뤄온 문명이 모두 괴멸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예언적 가상이 아니라 처음으로 현실적 가능성을 갖게 된 것이다.(현재 지구상엔 인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죽일 수 있을 만한 양의 핵무기가 저장되어 있다)
 
다만 이와 같은 핵무기의 위력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 사이의 전쟁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은 사실일 듯하다. 분쟁 지역의 나라들이 전쟁 억지력을 얻기 위해 핵무기를 갖고 싶어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핵무기가 안전한 세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핵무기만이 아니라 핵발전 같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까지도 후대의 인류에게 크나큰 재앙을 물려주는 나쁜 유산이 될 것이란 우려와 비판에 많은 사람들이 점차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는 그 재앙의 예고였다)
 
게다가 원자력산업에선 다량의 핵폐기물이 발생하는데, 이 핵폐기물로 만드는 무기가 열화우라늄탄이다. 한국전쟁에서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네이팜탄, 베트남의 삼림과 농촌을 초토로 만든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 걸프전쟁과 발칸전쟁에서 사용한 열화우라늄탄 같은 무기들은 핵무기가 아니라도 여러 의미에서 인간의 조건을 파괴할 수 있는 무기들이다.
 
그동안 이들 무기가 사용된 것은 모두 비서구 나라들이거나 서구 세계의 변방국들이었다. 그런데 그 피해는 전쟁에 동원되어 참전한 서구 나라들의 젊은이들 또한 면할 수 없었다.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갔으나 그들이 전장에서 사용한 무기는 자신들에게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그들은 베트남전쟁증후군, 걸프전쟁증후군, 발칸전쟁증후군이란 새로운 병명을 얻어 가지도 귀향하게 된 것이다.
 
현대 전쟁은 참전 군인들의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에도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이에 관해선 일찍이 제1차 세계대전 뒤 레마르크가 소설(‘서부전선 이상 없다’)로 형상화하여 증언했고, 거의 같은 시기에 영국의 한 정신과의사도 현대 전쟁이 ‘신경의 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의학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전한다. 아마도 20세기에 가장 많은 전쟁을 치른 것은 미국일 것이다. 그런 만큼 전쟁으로 피해를 본 젊은이들이 그 나라에 많을 것임에 틀림없다. 한 예로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의 실태를 보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들 중 70만 명이 지발성 스트레스로 진단받았고 그들 가운데는 자살자도 많았다. 기혼자의 38%는 귀국 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못하고 6개월 안에 이혼했다. 전투경험이 있는 사람의 4분의 1은 범죄 용의자로 체포되었다. 1980년대까지 뉴욕에서만 4만 명의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 아편중독자로 등록되었다.(크리스토퍼 코커: 전쟁과 20세기, 1994)
 
미국은 베트남전쟁 뒤에도 2000년까지 모두 63회나 지역분쟁 또는 내전에 개입했는데, 이후에도 개입 횟수는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한국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이데올로기가 명분인 것도 아니고, 석유 등 자원의 확보 같은 다른 어떤 실익과도 관련이 명확하지 않은 군사개입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막대한 군비를 들여 지역분쟁이나 내전에 계속 개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전이든 지역분쟁이든 어떤 전쟁도 맨손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부족이나 민족 종파 사이의 다툼으로만 보이지만 실은 각 종 무기의 대결이다. 소총 등의 총기류와 탄약은 통상적인 무기이고 전투가 확대되면 장갑차도 미사일도 동원되는데, 거의 대부분이 자체에서 생산할 수 없는 외래 무기들이다. 군수산업 선진국에서 생산된 이들 무기가 없었다면 참혹한 살육전으로 확대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다툼의 원인이 종족이나 민족 종파 사이의 증오와 대립의식이란 것만 세상에 알려지고,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의 상표가 무엇인지는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다투는 당사자들도 상대방에 대한 증오와 대립의식이 그들에게 제공된 무기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쌍방에 똑같이 홍수처럼 흘러들어가는 각 종 무기를 가지고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인데, 실은 더 많이 죽이고 죽을수록 선진국의 군수산업은 더욱 호황을 누리게 된다.
 
한데 선진국 군수산업의 호황엔 하나의 딜레마가 있다. 수요를 만들어내자면 타사 제품보다 성능이 좋아야 하고, 성능이 너무 좋으면 전쟁이 너무 일찍 끝난다. 그렇다고 성능이 뒤져도 안 된다. 전시가 아니라도 사정은 같다. 군사력은 안보의 핵심이기 때문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서 가상의 적국 또는 언제 적대관계로 돌아설지 모르는 이웃 나라들보다 상대적 우세를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전시가 아니라도 각 국은 국방예산을 계속 늘려야하고, 한 번도 써보지 못한 무기를 일정한 주기로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선진국 군수산업들이 무기의 개발과 도태의 순환을 되풀이 하면서 세계 무기 시장을 지배하는 원리이다. 또한 이는 몇몇 군사 강국을 빼고는 어느 나라도 군사력의 절대 우세를 유지할 수 없게 하고 지역의 안정도 계속 불안하게 한다.
 
무기는 전쟁이 필요하게 된 사회적 조건의 발생에 따라 약 1만 년 전쯤 중석기시대에 인류의 역사 무대에 등장한 이래, 그동안 그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왔고 무기의 성능이 발전함에 따라 전쟁의 규모와 본질이 바뀌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무기는 전쟁의 수단이었다. 그렇던 것이 20세기에 들어서 무기의 상품화와 함께 전쟁과 무기의 위상이 바뀌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마치 상품교환의 수단이었던 화폐가 수전노(화폐 축장자)에겐 그 자체가 목적으로 된 것처럼, 현대 군수산업에겐 무기가 전쟁의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는 전도가 일어난 것이다.
 
피로 얼룩진 세기가 지나가고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지 한참 되었는데도, 우주 차원에서 보면 먼지보다 작은 이 지구에선 인간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지구엔 핵무기를 비롯하여 무서운 위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넘쳐나고 있다. 그런데도 새로운 무기는 계속 만들어지고 그 성능이 내전이나 분쟁 지역의 현장에서 과시되고 있다.
에른스트 융거란 독일의 작가이자 평론가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전쟁 체험을 일기 형식으로 쓴 글에서 전쟁을 정치적 공기를 정화해주는 ‘강철의 광풍’으로 미화했다 한다. 그의 수사를 빌리면 제2차 세계대전은 그 많은 살육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에 오염된 지구의 공기를 씻어낸 전쟁이 된다. 그래서 드레스덴이나 베를린,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참상이 응보주의의 관점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갚음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리라. 하나 그러한 인정은 전쟁이 타자(민족 또는 국가)에 대한 부당한 폭력의 억지, 곧 평화라는 목표를 가질 때에만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게 아니고 지배나 다른 어떤 이득을 노린 것이라면 그러한 전쟁은 무뢰배의 폭력일 뿐이고 무기는 아무리 첨단과학의 최고 산물이라 해도 전혀 자랑거리가 아닌 흉기가 될 뿐이다.  / 통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