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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3-01 08:50
계곡마다 절승 - 서해명승 석담구곡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27   추천 : 0  

공화국의 황해남도 벽성군 석담리에는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서해의 명승 석담구곡이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는 선조들의 지혜와 재능이 깃들어있는 력사문화유적들과 이름난 명승지들이 많습니다.》

석담구곡이라는 말은 돌못과 아홉개의 골짜기라는 뜻에서 불리워진것이다. 그 아홉개 골짜기가 석담리에서부터 팔곡이 있는 내호리와 구곡이 자리잡은 도현리에까지 뻗어있다.

아홉개 골짜기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있는 석담구곡은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골짜기, 사철 푸른 소나무숲, 봄철의 꽃, 여름철의 록음, 가을철의 단풍, 겨울철의 설경 등 사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는것으로 하여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 석담구곡 -

 

남쪽에서부터 시작되는 첫번째 골짜기 즉 일곡을암이라고 한다. 산꼭대기에 있는 큰 바위가 마치 갓처럼 생겼다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두번째 골짜기는 여러가지 모양의 바위들이 봄이면 향기그윽한 연분홍진달래로 덮인다고 하여 화암이라고 하는데 골짜기를 따라 올라갈수록 다양한 경치가 펼쳐진다.

세번째 골짜기는 이끼푸른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서있어 취병이라고 하고 네번째 골짜기 즉 사곡이라고 부르는 송애는 락락장송 드리워진 깎아지른듯 한 높은 벼랑으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고있다.

구곡가운데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이 다섯번째 골짜기인 은병이다. 맑고 푸른 석담천이 감돌아흐르는 은병에 들어서면 푸른 산들이 병풍처럼 빙 둘러있어 고요하고 아늑한감을 준다.

여기에 력사유적인 소현서원이 자리잡고있다.

서원은 당시 지방에 있던 사설교육기관이였다.

소현서원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유학자 리이(호는 률곡)가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저술사업을 하던 건물이다.

이 서원은 동서로 축을 설정하여 삼문, 강당을 세우고 북쪽과 서쪽에는 사당과 각건물들을 마주세웠으며 건물마다에 소박한 모루단청을 하였다. 이밖에 삼문앞에는 루정인 요금정이 있고 거기에서 남서방향으로 수백m 떨어진 곳에 서원의 초기건물인 청계당과 비각이 있다. 강당인 은병정사와 청계당 그리고 요금정 등은 당시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건축술을 잘 보여주고있다. 

석담느티나무, 소현서원을 세우면서 심은 석담은행나무와 같은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천연기념물들과 함께 오랜 세월 이곳에 뿌리를 박고 자란 아름드리나무들이 력사유적들과 함께 명승지의 자연풍치를 더욱 돋구고있다.

 

 

소현서원 -

 

무성한 나무들이 우거져있고 절벽과 맑은 물이 흰모래우를 흘러 벼랑으로 떨어져 고인 넓고 깊은 못이 있는 여섯번째 골짜기 조협과 기암이 절벽을 이루고 가을에 온 골짜기가 단풍으로 붉게 물들여지는 일곱번째 골짜기 풍암, 고요한 달밤에 벼랑밑의 여울로 굴러내리는 물소리가 거문고에서 울려나오는 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금탄이라 하는 여덟번째 골짜기, 예로부터 주위가 고요하고 글읽기 좋은 곳이라 하여 문산이라 하였다는 아홉번째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석담구곡은 아홉개 골짜기마다 서로 다른 계곡미로 하여 유명한 곳이다.

이 명승지에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거룩한 발자취가 어려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부터 이곳을 여러차례 찾으시여 석담구곡을 전망성있게 잘 꾸려야 한다고 하시며 근로자들을 위한 휴양소를 일떠세워주시고 인민의 문화휴식터로 전변시켜주시였다.

주체49(1960)년 9월에 이어 주체63(1974)년 11월에도 또다시 이곳을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곡미에 어울리게 담천도 정리하고 나무들도 많이 심어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진 명승지를 잘 꾸릴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다.

오늘 석담구곡은 또 한분의 절세위인이신 경애하는 원수님의 은정속에 인민의 명승지, 문화휴식터로 훌륭히 변모되였다. 그 사랑, 그 은정을 전하며 인민의 명승지는 오늘도 내 조국의 자랑으로 빛을 뿌리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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