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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9-15 00:51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833   추천 : 0  
이 사건은 1866년 미국군함 《셔먼》호가 대동강에 침입하였다가 우리 인민들의 투쟁에 의하여 격침된 사건이다. 
  미제국주의는 100여년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감행해오고있다. 바로 미국침략선 《셔먼》호의 침입은 우리 나라에 대한 미제의 피묻은 침략력사의 첫시작이였다. 
  이미전부터 아시아대륙에서 조선반도가 차지하는 전략적중요성을 간파한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나자 조선에 대한 침략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미국침략자들은 먼저 《셔먼》호를 조선에 침입시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함으로써 조선침략의 길을 열어보려고 하였다. 《셔먼》호는 원래 1861년에 미국남부군에 소속된 군함으로 건조되여 《프린씨스 로이얼》(제일공주)호라는 이름을 달고 남북전쟁에 참가하였다가 북부군에 나포되여 1863년에 개조된 후 당시 살인, 방화, 략탈로 악명을 떨친 북부군 서부방면군 사령관 셔먼의 작전수행에 적극 참가하였다. 
  남북전쟁이 끝나자 미국지배층은 《프린씨스 로이얼》호의 이름을 《제네럴 셔먼》(셔먼장군)호로 고쳤다. 《셔먼》호의 길이는 60. 085m, 너비는 8. 235m, 높이는 9m이며 배는 2개의 보이라와 1개의 굴뚝, 2개의 돛대와 4개의 돛, 1개의 추진기, 4문의 포를 가지고있었다. 이와 같이 《셔먼》호는 증기기관과 돛을 겸용하고 추진기까지 달린것으로서 당시로서는 발전된 전투함선이였다. 
  미국침략자들은 조선침략에 앞서 《셔먼》호를 미국장교인 프레스톤의 개인무역선으로 위장시키였다. 
  《셔먼》호는 은밀히 화약과 포탄, 수많은 저격무기와 탄알 등을 싣고 90여명의 깡패들을 태운 다음 1865년에 미국을 떠나 다음해 6월(양력 7월)에 중국의 티엔진(천진)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은 순수 상업적목적으로 조선에 가는 평화적인 상선인듯이 더욱 위장하였다. 
  그후 산둥(산동)지방에서 영국목사 토머스를 사환군으로 채용한 다음 조선침략의 최종준비를 끝낸 《셔먼》호는 그곳을 떠나 1866년 7월 7일(8월 16일) 대동강어구에 침입하였다. 
  이때 룡강현의 한 관리가 침략자들을 규탄하면서 침입목적에 대하여 묻자 놈들은 국적도 밝히지 않고 자기들은 평양으로 간다고 하였으며 7월 8일 황주목의 관리들이 놈들의 불법행위에 대하여 강력히 추궁하면서 돌아가라고 단호히 경고하자 놈들은 《통상》이요, 《친선》이요 하면서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가리워보려고 교활하게 책동하였다. 침략자들은 정탐활동과 비법적인 수심측량을 하면서 대동강을 거슬러올라와 며칠후에는 평양의 한사정앞(쑥섬과 양각도사이)에까지 이르렀다. 놈들은 평양까지 오는동안 주변에 기여올라 살인, 강탈, 부녀자들에 대한 릉욕 등 온갖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7월 18일(양력 8월 27일) 놈들은 감시근무수행중인 평양감영의 배를 습격하여 2명의 조선군인을 살해하였으며 중군 리현익을 랍치하였다. 19일 평양감영의 대표와 미국침략자들사이에 벌어진 담판에서 조선측 대표는 미국해적무리들의 비법행위와 야수적만행을 규탄하고 중군을 돌려보내며 즉시 물러갈것을 강경히 요구하였다. 그러나 침략자들은 자기들을 평양성에 들여놓으며 쌀 1 000섬과 많은 량의 금, 은, 인삼 등을 내놓으라고 오만하게 행동하였다. 이 강도적인 요구가 거부당하자 침략자들은 보다 로골적인 략탈과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놈들의 오만무례한 행위에 격분한 평양지구와 대동강일대의 인민들은 침략자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궐기하였다. 바로 이 투쟁대오의 앞장에 서신분이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증조할아버님이신 김응우선생님이시였다. 선생님의 호소에 호응하여 투쟁에 일떠선 평양성의 인민들과 군인들은 결사대를 뭇고 적선을 불태워버리기 위한 화공전을 준비하였다. 7월말(양력 9월 2일)에 결사대는 김응우선생님의 지도밑에 《셔먼》호를 향해 일제히 불배를 띄워 내려보냈다. 불배에 포위된 《셔먼》호에 불이 달리고 이어 배의 화약고가 폭발하여 침략선은 대동강에 침몰되였으며 배에 탔던 놈들은 전투과정에 사살되거나 붙들려 모조리 처단되였다.
  이와 같이 김응우선생님의 화공전술과 평양군민들의 용감한 투쟁에 의하여 미국의 첫 침략무리들은 수치스러운 참패를 당하였다. 그때까지 미국의 해외침략력사에서 중무장한 근대적인 전투함선이 그 어느 나라에서도 격침된 사실은 없었으며 이것은 오직 조선에서 처음으로 있은 커다란 사변이였다. 
  《셔먼》호사건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가장 야만적이며 파렴치한 날강도무리이고 력사적으로 우리 나라를 침략하여온 조선민족의 철천지원쑤이며 조선침략에서 놈들에게 차례질것은 오직 수치스러운 참패와 죽음뿐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조선인민은 《셔먼》호의 침략을 반대하는 항쟁에서 빛나는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우리 인민의 애국적헌신성과 민족적기개를 남김없이 시위하였다.
  오늘 평양의 대동강기슭의 당시 전투장소에는 미국침략선 《셔먼》호격침기념비가 세워져있으며 여기에는 1968년 우리 공화국의 령해에 침입하였다가 나포된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전시되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