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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8-05 17:45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2,219   추천 : 0  
지난 3월 28일 심양시 황고구 금수가에서 살고있는 88세 나는 김룡수박사가 재중조선인총련합회본부로 찾아왔다. 
고령의 몸으로 시내뻐스를 타고 힘들게 찾아온 그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붉게 상기되여있었다. 
총련본부에서 심양시 황영두지부장과 나를 만난 김룡수박사는 품속에서 하나의 봉투를 꺼내놓았다. 
그는 지금 미국놈들이 남조선에서 벌리고있는 광기어린 북침핵전쟁연습소동에 솟구치는 적개심을 참을수 없어 찾아왔다고 하면서 날강도 미제와의 최후성전에 돌입한 조국인민들과 특히 인민군장병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얼마간의 원호금을 마련하였는데 본부에서 원호물자들을 사가지고 꼭 조국에 보내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였다. 
로인이 내여미는 봉투안에는 조국이 미제와 맞서 판가리싸움을 벌리고 있는 이때 모든 재중조선인들이 응당 힘을 합쳐 조국원호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자는 격조높은 호소문과 함께 그가 마련한 적지 않은 액수의 원호금이 들어있었다. 
나는 김룡수박사의 애국소행에 깊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나는 김룡수박사의 손을 꼭 잡고 총련합회를 대표하여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박사선생의 애국지성을 빠른 시일내에 조국에 전달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자연 생각이 깊어졌다. 
사실 김룡수박사의 생활은 그리 넉넉한 형편이 못되였다. 
그의 안해 박영화는 바깥출입도 못하는 장기질병중환자여서 그는 안해의 병치료를 위한 약을 사는데만도 매달 많은 돈을 들여야 했다. 
그리고 그들 내외가 모두 고령의 몸이여서 때식을 끓이는 일도 다른 사람의 일손을 사지 않으면 안되는 형편이였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끔 추세에 맞는 새 가구들을 사서 자기가 사는 집들을 현대적으로 꾸리느라고 하고있지만 김룡수박사선생은 돈이 없어 살림방에 옛날의 낡은 가구들을 그대로 놓고 쓰면서 검소하게 살아가고있었다. 
그렇듯 빠듯한 살림속에서도 김룡수박사는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실로 많은 지원사업을 하여왔다. 
그는 조국에서 진행하는 천리마거리와 통일거리건설들에 대한 지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건설에도 많은 지원을 하였으며 조국이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는 물론 조국에서 큰물피해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동포조직에 찾아와 지원사업을 자청해나서군 하였다. 
과연 그의 마음속에 무엇이 소중하게 자리잡고있어 그렇듯 애국사업에 헌신하여왔던가. 
김룡수박사는 1926년 8월 29일 조선의 량강도 신파군(당시) 자서리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의학에 뜻을 품었지만 간악한 일제통치하에서 자기의 꿈을 실현할수 없었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나라를 찾아주신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의 희망을 펼치게 된 그는 1946년부터 신파군 박관용병원에서 실습하면서 의학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조선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중국으로 건너온 그는 8년간 중국 길림의학대학에서 서의, 중의학을 전공하였고 1958년부터 길림성 통유현 제1병원에서 내과 주치의사로, 1980년부터 심양시 우홍구 제2병원에서 내과 주임의사로 일하였으며 1986년부터는 20여년동안 전통의학연구사업에 종사하였다.
 오랜세월 이역땅에서도 그는 꿈에도 소원하던 의학의 길에 내세워준 조국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조선의 해외공민이라는 자각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다.  
그는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매달 동포조직의 지부에서 모임을 가지는 날이면 누구보다 먼저 지부문화교양실에 달려나와 열성적으로 참가하였으며 심양시 지부 대흥분회장직도 맡아 수행하면서 분회에 소속된 공민들의 생활상 제기되는 애로들을 풀기 위하여 밤낮없이 뛰여다녔다. 
김룡수박사는 자기의 전문지식으로 조국의 의학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급성유기 린농약중독50명에 대한 위중, 위등, 경형자 구급치료의 체험≫, ≪위12지장궤양병인 600명에 대한 치료관찰≫ 등 의학가치가 있는 많은 론문들을 집필하여 조국에 보내였으며 신문이나 잡지들에 게재된 과학기술자료들가운데서 조국에 극히 필요되는 자료들이라고 생각되면 지체없이 그 내용들을 조선글로 번역하여 조국에 보내주군 하였다.
조국에서는 해외에서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백두위인들을 흠모하며 애국애족의 지성을 바쳐온 그에게 국기훈장 제2급, 공화국창건기념메달, 공로메달을 비롯한 국가수훈의 영예를 안겨주었으며 2008년 5월 16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의학박사칭호를 수여해주었다.
실로 김룡수박사에게 있어서 조국은 언제나 떨어져 살수 없는 어머니 품이였고 늘 마음속에 안고사는 삶의 기둥이였다. 
이처럼 귀중한 조국을 없애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미제가 끝내는 무서운 핵전쟁의 광풍을 몰아오고있는데 김룡기박사가 아무리 인생의 말년기에 이르렀다고 한들 어찌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수 있으랴.
조국에 원호의 지성을 바치는 김룡기박사의 마음은 미제와의 최후성전을 벌리는 조국인민들과 한 전호속에 있었다. 
근 68년간이나 우리 민족을 분렬시키고 화해와 단합의 길을 한사코 가로막다 못해 민족의 존엄과 자주권마저도 완전히 말살하려고 미쳐날뛰는 미제에 대한 치솟는 적개심이 그의 가슴속에 용암처럼 끓어번지고있었다.  
김룡수박사뿐만이 아니라 지금 시시각각으로 엄중해지고있는 조선반도정세와 관련하여 중국에서 살고있는 많은 해외공민들이 미제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를 안고 너도나도 사회주의조국에 원호의 마음을 합치고있다.
몸은 비록 멀리 이역땅에 있어도 사랑하는 조국인민들과 언제나 한마음 한뜻이 되여 경애하는 김정은원수님의 두리에 일심으로 뭉친 우리 공민들의 애국지성이 그렇듯 뜨겁게 고여있어 우리 조국은 더더욱 굳건하고 미제와의 싸움에서 우리 인민의 최후승리는 이미 확정적인것이다. 
나는 이토록 훌륭한 우리 공민들과 함께 있는 긍지감을 안고 온 겨레가 서로의 힘과 마음을 합쳐나간다면 미제를 비롯한 호전광들의 북침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고 우리 민족이 지향하는 조국통일과 공동번영의 창창한 미래를 반드시 앞당겨올수 있다는것을 굳게 확신하면서 분발하고 또 분발하여 우리 동포조직을 애국애족의 조직으로 더욱 튼튼히 꾸려나갈 결의를 굳게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