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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17 00:15
[북녘소식] 만복이 넘쳐나는 사랑의 보금자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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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99(2010)년 9월 17일 로동신문

만복이 넘쳐나는 사랑의 보금자리

비전향장기수 조창손동지의 가정을 찾아서

얼마전 우리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 은혜로운 조국의 품속에서 생일 80돐을 맞이한 비전향장기수 조창손동지의 가정을 찾았다. 넓고 시원한 방안에 들어서니 마침 온 가족이 모여앉아 뜻깊은 그날의 사진들을 펼쳐놓고 행복의 웃음꽃을 피우고있었다. 우리도 곧 그 즐거운 분위기에 파묻히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린 생일상앞에서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는 조창손동지와 그의 안해 권순옥녀성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동지들의 환한 얼굴들,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방실거리는 10살잡이 귀여운 손녀…

사진들에는 은혜로운 태양의 품속에서 행복과 영광의 최절정에 올라 인생의 락을 한껏 누리는 조창손동지를 비롯한 비전향장기수들의 긍지롭고 기쁨넘친 생활의 일단이 그대로 그려져있었다.

이때 문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동생, 잘 있었나.》하는 말소리와 함께 비전향장기수 김선명동지가 들어서는것이였다.

우리의 호기심어린 눈길에서 질문을 읽은 김선명동지가 《우리가 형제가 된 사연을 알고싶은 모양이군요.》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것이였다.

1973년 대전감옥의 겨울은 참으로 엄혹하였다.

당시 조창손동지는 위장병이 매우 심하여 꽁보리밥을 한숟가락도 넘기지 못하고있었다.

위병환자는 몸을 덥게 해야겠으나 감옥에서 그것을 바랄수는 없었다. 벽마다 성에가 하얗게 내불린 감방안은 말그대로 하나의 랭동고였다. 위벽을 훑어내리는 아픔을 참느라고 조창손동지는 많은 신고를 하였다. 그는 자기때문에 잠 못 들 동지들생각으로 이불을 물어뜯으면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김선명동지가 우들우들떠는 조창손동지를 꼭 껴안고 자기 몸으로 그에게 엄습해들어오는 추위를 막아주군 하였다.

반면에 교형리들은 그에게 전향하면 위장병도 고쳐주고 약도 주겠다고 회유하였다.

녀목사까지 전향공작에 동원하였다.

그러나 조창손동지는 《죽으면 죽었지 전향은 안해.》라고 하면서 끝까지 견디여냈다.

그때 김선명동지는 자기보다 나이가 아래인 조창손동지의 손을 꼭 잡고 우리 형님, 동생이 되여 서로 격려해주면서 끝까지 신념을 지키자고 약속하였다. 이렇게 그들은 형제가 되였다. 하지만 조창손동지의 병세는 나날이 심해갔다.

《조창손이는 이제 며칠 못살아.》

감옥병원측에서는 이렇게 선고하였다.

죽음의 문어구에로 점점 다가서는 조창손동지를 안타까이 바라보던 김선명동지는 양말을 잘라 자루처럼 만들고 거기에 꽁보리밥을 넣고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리고 거기에 물을 넣고 짜 밥풀처럼 된것을 조창손동지에게 먹이였다. 다른 감방의 동지들도 도와나섰다.

김우택, 안영기동지들이 적들의 눈을 피하여 구입한 약들을 보내주었다.

(나는 죽지 않아. 꼭 살아 평양으로 갈테다.)

이렇게 결심한 조창손동지는 불굴의 정신력으로 원쑤들과 싸웠다. 조국에 대한 신념과 강의한 정신력, 동지들의 눈물겨운 우애심이 그를 살렸다.

조창손동지는 죽음의 고비를 넘기게 되였다. 하지만 병마는 그를 계속 위협했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도 조창손동지의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남조선에 일가친척 한명없는 그는 김동기, 김창원 등 동지들의 방조를 받으며 겨우 몸을 유지하였다. 조국으로 귀환될무렵에는 병세가 더욱 악화되여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형편에 처하였다. 그러나 죽더라도 조국의 품에서 죽고싶었다.

39년만에 돌아오는 조국이건만 그는 그립던 땅을 자기 발로 밟지 못하였다. 그는 점적관을 꽂은채 판문점 중앙분리선을 넘어섰다.

이러한 그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에서 10년째나 살고있다.

그저 목숨만 붙어있는것이 아니라 건강을 회복하고 공화국영웅, 조국통일상수상자로 영광과 행복의 절정에서 만복을 누리며 살고있다. 어버이장군님의 사랑을 떠나 어찌 그의 행복한 오늘에 대해 말할수 있으랴.

1년 365일치고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는 날이 없다. 그이의 다심한 사랑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온다. 다른 비전향장기수들과 같이 담당의사는 물론이고 여러 봉사기관 일군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지내던 사람들이 우리 아버님이라고 정담아 부르며 찾아와 힘을 주고 정을 준다.

《수십년전에 죽음을 선고받은 제가 조국의 품에 안겨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여났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뜨거운 동지적사랑이 생명소가 되여 오늘까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80돐생일상까지 받으며 복을 누리고있습니다.》

조창손동지가 이렇게 격정을 터치자 《동생이 이제는 룡이 되였어.》하며 김선명동지가 그의 말을 받는것이였다.

《감옥에서 위장병을 심하게 앓을 때에도 소화제 한알 쓸수 없었던 아버지가 오늘은 어버이장군님의 보살피심속에 세상에서 값비싼 약들과 보약들을 다 쓰고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아들 조정삼동무가 커다란 약함을 꺼내보이는것이였다. 거기에는 고급영양제와 꿀, 인삼, 경옥고, 구기자엿 등 각종 보약들이 꽉 들어차있었다.

《아, 경애하는 장군님!

장군님께서 주신 이 좋은 집에서 전사 조창손이는 만복을 누리고있습니다. 적들은 나를 죽이려고 별의별 책동을 다하였지만 장군님께서는 나를 살려 세상이 보란듯이 삶의 언덕에 우뚝 세워주시였습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장군님 계시여 우리 가정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정으로 되였습니다. 이제 더는 저희 비전향장기수들 걱정은 마시고 멀고 험한 전선길에서 부디 안녕하십시오.》

조창손동지의 두눈에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있었다.

조창손동지의 생은 혁명전사들을 위해서라면 하늘의 별도 따와야 한다는 숭고한 뜻을 지니신 장군님의 불같은 동지애야말로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이 세상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임을 똑똑히 느끼게 하고있다.

그 위대한 사랑속에서 비전향장기수들이 살고 온 나라 인민이 산다. 정녕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선군조선은 만복이 넘쳐나는 크나큰 사랑의 요람이다.


본사기자 김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