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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2 01:21
[북녘소식] 장군님 잊지 못하시는 이름있는 작가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5,782   추천 : 0  
주체99(2010)년 8월 12일 로동신문 장군님 잊지 못하시는 이름있는 작가 리동춘선생을 영생의 언덕에 세워준 고귀한 은정 성스러운 혁명의 길에 시대의 명작을 남긴 작가는 령도자의 심장속에 영원한 추억을 남기게 된다. 열정적인 창작활동으로 당과 수령을 충직하게 받들었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잊지 못하시는 문필재사들이 그 얼마인가. 우리가 이야기하려는 리동춘선생도 한생의 심혼이 어린 명작들과 더불어 우리 장군님께 커다란 감회를 불러일으키는 작가이다. 지난 4월 어느날 국립연극단에서 재창조한 경희극 《산울림》을 관람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작품을 그전에 사회안전부연극단 창작실 작가였던 리동춘동무가 썼는데 정말 잘 썼다고, 그는 지난 시기의 작가들가운데서 자신께서 알고있는 이름있는 작가이라고 깊은 회고의 말씀을 하시였다. 이름있는 작가 리동춘선생, 사람들의 기억에서 삭막해졌던 그가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가슴뜨거운 사연은 조선의 작가들이 누리는 영광과 행복이 어떤것인가에 대한 고귀한 대답을 주고있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속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당을 따라 운명을 함께 하여온 우리 작가들의 빛나는 자욱을 더듬을 때면 감동깊이 되새겨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명언이 있다. 《작가는 시대의 앞장에서 나가면서 생활을 선도하고 이끄는 기수가 되여야 한다.》 이 유명한 명언은 단순히 현실을 반영하기만 할것이 아니라 생활의 선도자, 혁명의 나팔수가 되여야 하는 우리 작가들의 영예로운 사명을 밝힌 귀중한 지침이다. 국립연극단에서 재창조한 경희극 《산울림》을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작가가 마치 오늘을 내다보고 이 작품을 쓴것 같다는 분에 넘치는 말씀을 여러차례 하시였다. 여기에는 시대적배경과 생활환경, 구호는 비록 달라도 오늘의 현실에 꼭 들어맞는 경희극의 주제사상에 대한 평가와 함께 시대의 기수로 활약한 리동춘선생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깃들어있다. 그는 당정책을 노래한 작가, 수령의 사상으로 시대를 선도한 작가였기에 우리 장군님의 추억속에 이름있는 작가로 간직되여있는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리동춘선생을 심중에 새겨두신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경희극 《산울림》을 보시고 농촌현실을 생동하게 반영한 좋은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하신 때부터였다. 주체50(1961)년 10월 어느날이였다. 천리마의 기상으로 들끓는 조국강산에 가을빛이 짙어가고있었다. 그무렵 강원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쁘신 시간을 내시여 강원도립예술극장(당시)에서 창작완성한 경희극 《산울림》을 보아주시였다. 이날 극장관람석에는 류달리 흥분되여있는 한 작가가 있었다. 그가 바로 경희극 《산울림》의 대본을 창작한 리동춘선생이였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우러러뵙던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였건만 정작 막이 오르자 그는 근심부터 앞섰다. 우리 연극계에서 처음으로 계급적갈등이 아닌 웃음을 담은 이 경희극은 무대에 오른 첫날부터 론난에 부딪치고있었다. 론쟁거리로 된 작품이 어버이수령님께 걱정을 끼쳐드리면 어쩌랴싶어 그는 뒤설레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있었다. 무대우에 펼쳐지는 생활을 주의깊게 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디를 원형으로 하였는가, 작가가 누구인가를 물으시고나서 아주 락천적이고 사실 그대로요! 라고 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공연이 끝나자 제일 먼저 박수를 보내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잘됐습니다! 이런 작품을 많이 써야 하겠습니다. … 락천적이고 긍정이 있고 명랑하고 아주 좋습니다. 내용이 좋습니다. 진실하고 근래의 좋은 작품입니다.》 순간 리동춘선생은 뜨거운것이 울컥 치밀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북받쳐오르는 감사의 정은 맑은 눈물이 되여 두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 이날 그는 어버이수령님의 품속에서 흘러온 나날들이 돌이켜져 온밤 잠못이루었다. 리동춘선생이 배운것이란 해방전 사립학교를 한해 드나든것이 전부였다. 가난에 찌든 황해북도 봉산군의 한 농촌마을에서 태여난 그는 어릴적부터 남의 집 아이보개와 품팔이로 설음이 가실새 없었다. 종일가야 고역뿐이던 그에게 제일 큰 소망은 연극구경을 실컷 해보는것이였다. 연극에 정신을 팔면 잠시나마 가긍한 처지를 잊고 공상의 나래를 펴게 되였다. 돈이 없는탓에 귀뿌리를 잡히워 내쫓기우면서도 하루에도 몇번씩 객석으로 숨어드는 그의 끈덕진 성미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해방의 환호성이 온 강산을 진감하고 남녀로소모두가 극적인 운명전환을 맞이하던 때에 리동춘선생도 비로소 참된 인생을 시작하게 되였다. 현해탄너머에까지 끌려다니며 20살나이를 막돌처럼 썩인 더벅머리청년은 예술의 꿈도 꽃피울수 있었다. 리동춘선생은 하늘같은 그 은덕이 눈물겹도록 고마왔다. 그럴수록 우리 인민의 새 생활을 무대우에 마음껏 펼치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누를길 없었다. 이렇게 되여 황해북도의 한 예술단체에서 배우생활을 하던 그는 용약 창작의 붓을 들게 되였다. 전후 황해제철소(당시)복구공사를 다그쳐 끝낼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전해듣자 리동춘선생은 아예 가족까지 다 데리고 황철에 나가기로 하였다. 철생산자들의 생활을 밑바닥까지 체험하자는것이였다. 한번 내린 결심은 좀해서 거두지 않는 그에게 어느날 안해는 현실체험이면야 혼자 내려가 자리를 잡고 집에 드나들면서도 할수 있지 않겠느냐고 은근히 속생각을 내비쳤다. 남편뒤바라지에 애어린 자식들까지 거두어야 하는 안해의 심정을 그가 모를리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전쟁의 상처를 빨리 가시고 나같이 천대받던 사람들을 세상에서 제일 잘 살게 해주시려는것이 우리 수령님의 뜻이요. 황철이 끓고있는데 로동계급을 고무하는 글을 꼭 써야겠소. 수령님의 은혜에 보답하자고 붓을 잡았는데 어찌 쉬운 길만 택하겠소.》 이것은 리동춘선생의 심장의 토로였다. 이렇게 황철에 내려간 그가 용해공들과 함께 펄펄 끓는 쇠물을 다루며 로동계급의 대쪽같은 신념과 깨끗한 량심도 배우고 로동속에서 맺어지는 아름다운 사랑과 전진의 장애물을 용납하지 않는 쇠소리가 나는 기질에도 공감하면서 벅찬 현실을 원고지에 그대로 옮겨놓은 작품이 연극 《위대한 힘》의 대본이였다. 천만운명을 한품에 안고 광명한 미래에로 이끌어가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름없는 창작가, 예술인들의 애국적열정도 귀중히 여기시며 시대의 복판으로 힘껏 떠밀어주시였다. 사회주의혁명승리의 만세소리가 하늘땅에 차넘치던 주체47(1958)년 9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연극 《위대한 힘》을 보아주시였다. 연극을 보신 수령님께서는 창작가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였다. (수령님께서 부르시다니?!…) 숨이 꺽 막히는듯한 소식이였다. 리동춘선생은 어느결에 그이앞에 당도하였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였다. 창작가들을 반갑게 맞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 연극은 교양적가치가 크고 시기적절한 작품이라고 하시면서 대단히 좋습니다, 류사성과 도식성을 완전히 청산한 연극입니다, 작품이 연설로 된것이 아니라 생활자체를 보여주었습니다라고 높이 치하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작품의 몇가지 부족점을 차근차근 일깨워주시고나서 여러 군을 순회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라고, 아주 성공한 연극이라고 하시며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성공한 연극! 크나큰 기쁨에 넘쳐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숭엄히 우러르며 리동춘선생은 당이 바라는 작품이 어떤것인가를 뇌리에 깊이 새겨넣었다. 돌이켜보면 시대가 명작을 낳는다는 말도 있지만 우리 수령님 펼치신 천리마시대처럼 문학예술의 모든 령역에서 명작폭포가 쏟아지고 명인재사들이 무수히 배출된 때가 력사의 어느 시대에 있었는가. 지난날의 천덕꾸러기들이 천리마기수로, 영웅으로 우후죽순처럼 자라난 이 시대는 우리 작가들의 창작활동에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한편한편의 문학예술작품이 천사람, 만사람을 천리마에 태우는 위력한 힘으로 되여야 한다는 어버이수령님의 뜻을 받들고 원고지묶음이 든 배낭을 지고 시대의 격류속에 뛰여든 사람들이 얼마인지 모른다. 위대한 그 품에 안겨들 때면 누구라없이 불타오르는 충정이 리동춘선생의 가슴속에도 쇠물처럼 끓어번지였다. (수령님의 사상과 뜻을 내 한생 천리마를 타고 따르리라!) 수령의 사상에 심장으로 공감하고 조국의 번영을 누구보다 열망하였기에 그는 시대와 숨결을 같이하며 경희극 《산울림》과 같은 명작을 창작할수 있은것이다. 경희극 《산울림》은 시대정신으로 심혼을 불태운 리동춘선생의 숭고한 사명감이 낳은 대표적인 명작이라고 할수 있다. 당 제4차대회를 알곡증산으로 맞이할데 대한 당의 호소가 전해지자 그는 마식령너머의 법동군 어유리로 달려갔다. 벌방은 물론 깊은 산골에서도 당정책이 빛나게 구현되는 현실을 작품에 반영할 결심이였다. 그는 배낭을 숙소에 벗어놓는길로 일손을 잡았다. 그 누구인들 친형제처럼 어울리지 않았으랴. 그러나 당의 은덕으로 부러운것 없는 이곳의 현실은 극작품의 소재를 얻기엔 적합치 않은듯싶었다. 소재탐구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릴 나약한 마음이 불쑥거리기도 하였다. 그런 때면 작가적량심이 머리를 쳐들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농장에서 느낀 소감을 놓고 군당일군과 마주앉았던 리동춘선생은 일순간 눈이 번쩍 트이였다. 자만과 혁신! 지심깊이 끓던 용암이 터져오르듯이 창작적사색이 한껏 응축된 그의 뇌리에 작품의 문제점이 섬광처럼 번뜩인것이였다. … 어버이수령님께서 경희극 《산울림》을 높이 평가하신 그때에 벌써 리동춘선생의 작가적충실성과 뛰여난 재능을 깊이 헤아리신분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이시다. 토지개혁법령발포 16돐을 맞던 주체51(1962)년 3월 5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국립연극극장에서 평양연극영화대학 학생들이 출연한 경희극 《산울림》을 보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연을 보시고나서 경희극창조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고, 이 작품을 보면 누구나 성과에 자만할것이 아니라 계속혁신, 계속전진해나가야 한다는 자각을 가지게 될것이라고 뜻깊게 말씀하시였다. 그날 우리 장군님께서 전문배우 못지 않게 연기를 잘한 출연자들에게 풍경화 《금강산》을 안겨주신 사실은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혁명일화이다. 리동춘선생은 력사의 그날과 더불어 경애하는 장군님의 기억속에 더욱 깊이 새겨지게 되였다. 우리 장군님께서는 그의 경력까지 환히 꿰들고계시였으니 시대를 선도하는 작가들에 대한 그이의 애착은 참으로 각별한것이였다. 지난 4월 국립연극단에서 재창조한 경희극 《산울림》을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극장을 떠나오신 후에도 리동춘선생을 감회깊이 회상하시면서 《리동춘동무는 이름있는 작가입니다.》라고 또다시 은정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 장군님의 추억의 세계에 안긴 문필재사는 잊혀지는 법이 없으며 세월의 흐름과 함께 더욱 빛나게 되는것이다. 자애로운 스승의 품에 안겨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리동춘선생을 회고하시는 기회에 그는 경희극 《산울림》뿐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극작품들을 수많이 창작한 이름있는 작가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근 40년간의 창작활동기간 그가 심혈을 바쳐 완성한 100편도 넘는 작품들은 생활에 대한 진실한 형상과 약동하는 시대정신, 랑만적인 정서로 하여 커다란 인식교양적의의를 가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추동한 그 한편한편의 작품들에 위대한 스승의 손길이 얼마나 뜨겁게 미치였는가를 다는 알지 못할것이다. 어느해 3월 이른봄날이였다. 미제가 도발한 《푸에블로》호사건으로 일촉즉발의 정세가 조성된 때였다. 혁명과 건설에서 문학예술이 발휘하는 힘을 더없이 중시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뚝 떼내시여 모란봉극장에 나오시였다. 이날 리동춘선생이 대본을 완성한 연극작품을 보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창작가들을 부르시여 수고들 했다고, 그런데 작품에 바로잡아야 할 부분들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작품의 수정방향을 진지하게 의논해주시였다. 그이께서 극장을 떠나신 때는 별들만이 총총한 자정이 가까와올무렵이였다. 다음날이였다. 당중앙위원회 해당 부서에서 찾는다는 련락을 받고 달려간 리동춘선생은 너무나 뜻밖의 사실앞에서 굳어지지 않을수 없었다. 그를 맞이한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날 극장에서 돌아오신 후에도 쉬지 않으시고 친히 작성하신 작품수정안을 넘겨주는것이였다. 동녘이 밝아올무렵까지 작품대본을 마주하고계시였을 수령님의 로고가 사무쳐와 그는 무어라 형언할수 없는 심정에 휩싸였다. 밀림의 우등불가에서 《피바다》의 대본을 쓰시던 항일전의 그 나날처럼 한밤을 지새우시며 명작창작의 세계를 펼치신 자애로운 스승의 손길! 일찌기 항일의 불길속에서 《피바다》, 《경축대회》, 《성황당》, 《3인1당》, 《혈분만국회》와 같은 수많은 연극들을 창작하시여 천만심장을 격동시키시고 주체연극예술의 빛나는 력사를 개척하신 우리 수령님이시다. 세계문학재보들을 도통하시고 인류지성을 굽어보시는 문학예술의 거장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슬하에 안기였기에 리동춘선생의 작품들은 생동하고 인상깊은 형상속에서 혁명의 진리가 흘러나오는 명작들로 태여날수 있은것이다. 천리마시대의 격동기를 승리와 영광으로 빛내여가시는 우리 수령님의 두 어깨에는 얼마나 무거운 짐이 실리였으랴. 하지만 그이께서는 시대의 명작을 내놓는 일이라면 시간과 정력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리동춘선생의 작품들을 자주 보아주시면서 때로는 작가를 불러 생각되는 점을 손수 적어주시고 언제인가는 연극의 제목도 즉석에서 훌륭하게 고쳐주시였으며 어느 장면은 살리고 어떤 부분은 없애며 어느 인물의 성격은 어떻게 고쳐야 한다는 등 실로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저녁식사도 미루시며 작품의 구성과 인물형상방도를 일깨워주시고 력사문제취급을 어려워할 때에는 오랜 시간 당시의 구체적인 실태까지 알려주시던 그 많은 이야기를 어찌 다 전할수 있으랴. 그 나날 리동춘선생은 전형창조에서 정책적대를 세우는 방법론, 인간관계를 극적으로 심화시키는 수법, 생활적이며 철학적인 대사를 끌어내는 묘리들을 체득하며 《극을 위한 극》에 매여달리던 낡은 극작술을 털어버릴수 있었다. 연극 《새별》, 《인민을 위한 숨은 투쟁》, 경희극 《자랑끝에 있은 일》 등 어버이수령님의 손길에서 완성된 그의 작품들은 인민들속에서 절찬을 자아내였다. 우리는 여기에 리동춘선생이 어버이수령님의 위인상을 감동깊이 체험한 한가지 사실만을 더 전하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가 창작한 연극 《서희장군》을 지도하실 때였다. 연극이 막을 내리자 수령님께서는 리동춘선생을 휴계실로 부르시였다. 한달음에 달려와 인사를 올리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작품이 아주 좋고 대작이라고 하시면서 동행한 일군들과 인사를 나누라고 등을 떠밀어주시는것이였다. 이름없던 작가를 슬하에서 손때묻혀 키워주시고 그의 성장이 못내 대견하시여 내세워주고싶어하시는 우리 수령님의 웅심깊은 사랑, 정녕 그것은 리동춘선생에게 명작창작의 지혜와 열정을 샘줄기처럼 부어준 귀중한 자양분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어느해 첫아침에는 그를 신년경축연회에 부르시여 축배잔까지 들려주시며 새해에도 건강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쓰라고 따뜻이 당부하시였다. 리동춘선생은 수령의 믿음에 보답할 열망으로 자나깨나 피끓이며 자신을 깡그리 바친 진짜배기작가였다. 《창작은 붓이 아니라 심장으로 하는 일이다.》 이것이 그의 신조였다. 그는 앉으나서나, 잠결에서조차 어버이수령님께 기쁨을 드릴 명작을 내놓기 위해 사색을 멈추지 않았다. 당에서 알곡증산을 호소하면 그길로 협동벌에 나가 거름을 져나르며 심혈을 기울였고 우리 당의 반제자주적립장이 천명되면 침략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우리 인민의 강의한 기질을 무대에 담기 위해 고서들을 뒤적이며 밤을 지새웠다. 그의 작품들이 당정책에 민감하고 구수한 흙냄새, 기름내를 짙게 풍기는것은 이런 충정의 결실이였다. 혁명의 길에서 맺어지고 창작의 세계에서 두터워진 백두산위인들과 리동춘선생사이의 인간관계는 위대한 스승과 작가사이의 한없이 고결하고 의리깊은 관계로 우리 혁명사의 갈피갈피를 빛나게 장식하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문학예술혁명의 장엄한 포성을 울리신 그때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대의 명작들이 쏟아져나와 주체문학예술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고 우리 군대와 인민의 사상의식령역에도 놀라운 전변을 가져왔던가. 리동춘선생을 늘 마음속에 새겨두시였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연극혁명의 격동적인 시기에 그를 불후의 고전적명작 《성황당》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현하는 영예로운 대오에 세워주시였다. 세상을 경탄시킨 영화혁명, 가극혁명의 불길을 목격하며 경애하는 장군님께 온넋이 끌리였던 그는 젊음이 넘치시는 백두산위인의 슬하에서 가슴벅찬 성장기를 또 한차례 체험하게 되였다. 주체의 심원한 원리가 구현된 철학적인 종자, 풍자극을 생활의 론리에 따라 웃음도 있고 사색도 있게 끌고나가는 문제, 생활을 조화롭고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다장면구성형식, 흐름식립체무대와 음악을 도입한 황홀한 무대종합예술… 우리 장군님의 정력적인 지도를 받아안던 그 나날은 연극창작에 한생을 바쳐온 리동춘선생을 일찌기 알지 못한 신비의 세계에로 걸음걸음 이끌어준 환희와 경탄의 날과 달이였다. 주체67(1978)년 8월 3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혁명연극 《성황당》의 시연회를 보시고 연극혁명의 첫 승리를 선포하신 력사의 그날 리동춘선생은 그이를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의 시각을 맞이하였다. 백두의 정기를 타고나신 우리 장군님께 무한히 매혹되여 행복에 젖어있던 그 시각 그의 심장은 이런 웨침을 터치고있었다. (또 한분의 절세의 위인을 모시여 주체연 극예술은 찬란한 개화기를 맞고 이 전사도 끝없이 축복받는 삶의 길을 걷습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과 혁명앞에 큰 공적을 남기면서도 언제한번 앞에 나설줄 모르는 리동춘선생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손목시계도 채워주시고 김일성상계관인의 값높은 영예도 안겨주시였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딸에게서 온 편지》를 《성황당》식연극으로 무대에 올리던 나날에도 그를 믿어주신 장군님께서는 작품이 완성되였을 때에는 작가를 어버이수령님을 모시는 기념촬영장에 내세워주시였다. 당과 수령의 품속에서 자라난 우리 작가들의 신념은 백두의 메부리처럼 억세고 강직하다. 그들은 붓끝을 벼리고 또 벼리며 주체혁명위업의 뿌리가 내리던 력사의 화폭들을 후세에 길이 전해갈 일념으로 가슴 불태우고있다. 리동춘선생도 그런 작가였다. 그가 주체57(1968)년에 창작완성한 연극 《우리의 어머니》는 조선의 위대한 어머니 강반석녀사의 혁명활동과 숭고한 혁명가적풍모를 형상한 대표적인 연극으로서 주체연극예술사에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고있다. 절세의 위인들의 슬하에서 창작의 전성기를 꽃피운 리동춘선생의 긍지높은 삶은 그의 충정과 열정이 슴배인 수많은 극작품들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자욱으로 비껴있다. 천리마시대의 명작과 더불어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은 선군혁명의 폭풍속에서 문학예술의 비상한 위력을 최상최대로 떨쳐가시는 위대한 령도의 거장이시다. 김일성민족의 위용을 과시하며 광명한 미래에로 노도쳐 나아가는 우리 조국강산에 강성대국의 《산울림》이 장쾌하게 울리고있다. 지난 5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외국방문에서 돌아오신길로 대성황리에 공연되고있는 김일성상계관작품 경희극《산울림》을 또다시 관람하시였다. 대외활동의 긴장한 나날에도 명작의 화폭들이 자주 생각나시고 승리의 신심이 북받쳐오르시여 겹쌓인 피로를 푸실사이없이 공연무대를 다시 마주하신 그이이시였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경희극 《산울림》은 볼수록 작품이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시면서 《작가 리동춘동무가 경희극<산울림>대본을 잘 썼습니다.》라고 다시금 높이 치하하시였다. 그이의 은정깊은 말씀은 당과 수령을 일편단심 받든 한 작가에게 안겨지는 고귀한 평가로 력사의 갈피에 깊이 새겨졌다. 근 반세기가 흐른 때에 천리마시대의 명작을 다시 무대에 펼쳐주시고 작품에 김일성상을 수여하도록 크나큰 사랑을 베풀어주시고도 작가의 공적을 거듭 내세우시는 위대한 은인이신 경애하는 장군님! 그 감격적인 시각은 리동춘선생의 마지막소원이 풀리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경희극 《산울림》의 가치와 생명력을 일찍부터 통찰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창조와 기적으로 강산이 들끓던 1980년대에도 함경남도예술단체에서 이 경희극을 재창조하여 무대에 올리도록 할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뜻을 전달받은 리동춘선생의 온몸에는 새 힘이 솟구쳐올랐다. 그는 병약한 몸이였지만 곧 원고지를 마주하였다. 시대의 부름에 화답하려는 우리 작가들의 충정은 바로 이렇다. 때식을 잊고 책상을 뜨지 않는 그를 안해와 자식들도 어쩔수 없었다. 불철주야의 창작전투로 작품을 다시 완성한 그는 창조집단에 원고를 넘겨준 몇시간후 애석하게도 심장의 고동을 멈추었다. 그날은 주체77(1988)년 3월 24일이였다. 경희극 《산울림》의 창작으로 시대를 울리고 사연깊은 명작과 함께 생의 마무리를 의의있게 장식한 리동춘선생, 그의 고결한 충정이 우리 장군님의 의리깊은 손길에서 마침내 빛을 보게 되였으니 그가 이 사실을 안다면 뜨거운 눈물로 두볼을 적시고 또 적시였으리라. 참으로 김일성상계관작품 경희극 《산울림》은 시대의 명작을 남긴 재사들을 세월의 한끝까지 빛내여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숭고한 의리의 세계에 안긴 리동춘선생의 삶의 메아리인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리동춘선생에게 안겨주시는 대해같은 은정은 우리 작가들에 대한 사랑과 의리의 정화를 이루고있다. 지난 4월 30일에 진행된 경희극 《산울림》창조사업에서 공로있는 창작가, 예술인들에 대한 표창식에서는 리동춘선생에게 로력영웅칭호가 수여되였다. 20여년전에 심장의 고동을 멈춘 작가에게 영웅메달이 안겨지던 시각 오열을 터뜨리는 유가족은 물론 온 장내에 격정의 파도가 일렁이였다. 세월의 이끼속에 파묻혔던 공적이 비로소 알려진 사람도 아니고 강성대국건설에서 이름을 날린 기적의 창조자도 아닌 그가 불멸의 위훈자로 다시 세상에 나서게 된 이 경이적인 사실이야말로 희세의 의리인이신 우리 장군님께서만이 창조하실수 있는 또 하나의 혁명전설이다. 리동춘선생은 오늘 애국렬사릉에 올라 령도자의 품에서 영생하는 작가의 영광넘친 삶을 온 세상에 구가하고있다. 그는 혁명의 군복을 입고 당과 뜻도 운명도 함께 하며 생의 마지막까지 붓대를 놓지 않는 숭고한 모범을 보여주었다. 시대의 자욱이 비낀 그의 명작들은 수령의 품에서 자란 작가는 현재만이 아니라 50년, 100년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생활을 선도하며 혁명을 힘있게 추동해야 한다는 철리를 새겨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지난 5월 12일 리동춘선생의 유가족이 삼가 올린 편지를 친히 보아주시였다. 글줄마다에 형언할길 없는 고마움과 다함없는 충정의 맹세가 차넘치는 그 편지를 받아보실 때 그이의 마음이 얼마나 뜨거웠으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령도자를 하늘처럼 믿고 따르는 훌륭한 우리 인민을 위해 더욱 힘차게 일해나가실 자신의 심중을 담아 편지에 친필을 남겨주시였다. 리동춘선생과 그 유가족에게 끊임없이 베풀어지는 이 전설같은 사랑과 의리는 결코 한 작가에게만 머무르는것이 아니다. 위대한 스승, 위대한 어버이를 모시여 21세기 문예부흥의 환희로운 현실이 펼쳐지고 작가들의 삶이 최상의 경지에서 빛을 뿌리는 내 나라, 내 조국! 노래에도 있듯이 위대한 장군님과 사랑과 의리로 굳게 맺어진 조선의 작가들은 따르는 마음도 하나, 받드는 마음도 하나이다. 영원한 동행자, 충실한 방조자, 훌륭한 조언자로 불러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하늘같은 믿음에 심장의 붓으로 화답해나서는 열혈작가들이 무성한 숲을 이루었기에 김정일강성대국의 진군나팔소리는 오늘도 래일도 누리를 진감하며 천만심장에 불을 달것이다. 최후승리를 소리쳐 부르는 경희극 《산울림》의 메아리와 더불어 리동춘선생의 삶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언제나 살아있을것이다. 본사기자 백 룡 본사기자 김성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