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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17 08:31
[북녘소식] 어제날의 축구선수를 추억하시며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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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날의 축구선수를 추억하시며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생을 아름답게 마치는 사람은 당의 사랑과 추억속에 영생합니다.》
  나라와 인민앞에 공로를 세운 사람이라면 기어이 찾아 내세워주시고 빛내여주시는분이 바로 우리의 경애하는 장군님이시다.
  그 크나큰 사랑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영웅으로, 애국자로 떠받들리웠고 죽어서도 영생하는 삶을 누리였던가.
  《기계다리》 허죽산도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사람들속에 다시 알려진 축구선수이다.
  주체84(1995)년 8월 7일이였다.
  이날 체육부문의 한 일군을 만나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뜻밖에도 그전에 우리 축구선수들가운데 《기계다리》로 불리우던 이름있는 선수가 있었다고 추억해주시였다.
  순간 그 일군의 가슴은 크나큰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근 50년전에 세상을 떠나 이제는 그 이름마저도 희미해진 축구선수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때 인민들속에서 불리우던 《기계다리》라는 호칭 그대로 불러주시며 그의 길지 않은 한생을 뜨겁게 추억해주신것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특기선수의 전형으로 내세워주신 그 《기계다리》의 이름은 허죽산이였다.
  주체13(1924)년 빈농가의 가정에서 막내아들로 태여난 허죽산은 어려서부터 뽈차기를 소원하였으나 모진 가난탓에 고무공 하나 마련할 길 없어 새끼로 만든 공을 차며 짬짬이 축구기술을 익혔다. 그후 그는 중국 길림성 룡정축구팀의 유능한 공격수로 널리 알려지게 되였으나 《징용기피자》라는 죄아닌 《죄》를 짓고 사람들의 눈을 피해다니는 신세가 되였다. 그러던 그가 해방후 어버이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참다운 체육인의 삶을 누릴수 있었으며 수많은 국제경기들과 국내경기들에 10번을 달고 참가하여 자기의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였다.
  허죽산은 공몰기가 교예사와 같고 련락이 정확할뿐아니라 차넣기에서도 특기를 가진 유명한 축구선수였다.
  미제가 우리 조국땅에 전쟁의 불을 지르자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간 그는 용감히 싸우다가 애용하던 축구화를 가슴에 안은채 숨을 거두었다.
  너무나도 짧게 산 20대의 축구선수 허죽산.
  이름보다도 《기계다리》라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불리운 그가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속에 오늘날 또다시 사람들의 기억속에 되살아나게 된것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