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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20 12:05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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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지》, 《저고리》라는 낱말자체는 조선봉건왕조초기에 처음 나온것으로 알려지고있다. 《세종실록》을 비롯한 조선봉건왕조시기 력사기록에는 《적고리》, 《파지》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것은 인민들속에서 널리 통용된 저고리, 바지라는 입말을 한문으로 표기한것이다. 그 이전시기에는 바지를 《고》 또는 《가반》이라고 하였다. 저고리는 《상》, 《유》, 《위해》 등으로 불렀다. 《고》는 한문으로 바지라는 뜻이며 《가반》은 고유한 우리 말이고 《상》, 《위해》는 저고리라는 한문표현이다. 조선의 민족의상 바지와 저고리는 민족문화가 창조되던 초기에 그 원형이 마련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할수 있다. 우리 민족은 신석기시대에 벌써 베천을 짜기 시작하였으며 독특한 민족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고조선시기에는 비단을 비롯한 여러가지 천으로 바지와 저고리를 화려하게 만들어입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후 바지와 저고리는 여러차례 변화발전되면서 계승되여오다가 18세기경에 이르러 오늘과 같은 형식으로 고착되였다고 한다. 우리 민족옷이 바지와 저고리형태를 띠게 된것은 우리 나라의 자연기후조건과 관련된것으로 보고 있다. 초기에 나온 웃옷은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바람이 들어가지 않게 앞섭을 겹쳐 여미고 허리를 끈으로 묶어입도록 되여있었으며 아래옷은 두다리를 각각 천으로 감싸고 실로 꿰맨 통이 좁은 바지형식으로 되여있을뿐아니라 바지밑단을 터쳐놓지 않고 대님(발목을 졸라매는 끈)으로 묶어입도록 하였다. 이처럼 우리 민족은 옷을 지어입기 시작한 초기부터 오늘과 같은 바지와 저고리형식의 독특한 민족의상을 창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