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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24 11:34
중세의 진보적인 명인들(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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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박연암과 정다산의 사회개혁리론과 문학작품은 지금으로부터 200년전에 나온것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것이며 세상에 자랑할만한것이다.》 1737년 3월 5일에 출생한 이름난 실학자이며 작가인 박연암의 본명은 박지원이다. 연암은 그의 호이며 자는 중미이다. 호와 자란 낡은사회에서 본이름외에 따로 지어 부르던 이름을 말한다. 철학, 력사, 천문, 지리, 풍속제도, 문화 등 각 방면에 걸쳐 깊은 지식을 가지고있던 박연암은 빈말공부만을 일삼는 주자성리학과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불합리한 봉건질서를 개혁할것을 주장하는 실학사상들을 제기하였다. 처음에 그는 자기의 주장과 사회개혁리론들을 여러가지형식의 문학작품창작을 통하여 표현하였다. 박연암은 1754년에 옛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첫 단편소설 《광문전》을 창작한후 련이어 《민옹전》(1757년), 《김신선전》(1765~1766년경), 《우상전》(1767년) 등 《방경각외전》에 들어 있는 9편의 단편소설을 창작하였다. 그중에서 《량반전》(1760년대)은 량반들의 무위무능을 폭로비판하고 그 생활의 종말을 선고한 풍자소설로서 18세기 우리 나라 소설문학발전의 새로운 리정표로 되였다. 그는 또한 려행을 즐기여 전국각지의 명산을 두루 답사하면서 시를 썼는데 장시 《해인사》, 7언률시 《농사집》, 7언절구 《새벽에 길 가다가》, 《산길을 가다가》와 같은 시작품들은 려행길에서의 체험세계를 읊은것이고 장시 《총석정에서 해돋이 구경》은 1764년에 금강산을 중심으로 동해안일대를 유람하면서 지은것이다. 그러다가 당시의 세도가였던 홍국영의 박해를 피하여 황해도 금천군에 내려가 다각적영농방법을 시도하였으며 농서를 널리 수집연구하고 농민들의 좋은 농사경험을 모아 영농기술에 관한 책인 《과농소초》의 저술을 준비하였다. 그후 자신의 실학사상을 실현해 볼 생각으로 1786년에 벼슬길에 나서 양양부사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그는 자신의 실학적경륜을 주장하는 정론투의 글들을 썼는데 그중에서 《한민명전의》와 《과농소초》는 토지문제와 영농법에 대한 다년간의 연구성과를 집대성한것으로서 과학문화사적으로 의의 있는 저술이다. 또한 모방주의를 반대하여 적극적인 평론활동을 벌렸으며 시 《좌소산인에게 준다》를 비롯한 여러 형식의 평론글들에서 문학창작의 주요한 리론적문제들과 문학과 현실과의 관계문제, 예술적전형화에 관한 문제 등에 대하여 유물론적립장에서 정당한 해답을 주었다. 이외에도 박연암은 《천원지방설》을 반대하고 지구는 둥글고 부단히 돌고있다는 학설을 주장하였으며 세계의 시원을 물질적인것으로 보려는 소박한 유물론적견해를 가지고있었다. 그는 불합리한 봉건통치제도를 부분적으로 고칠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큰 나라를 무턱대고 떠받드는 량반유학자들의 사상관점을 비판하였다. 그는 적서차별의 철페, 화페제도의 개편, 상업과 농업의 발전을 위한 제안들을 내놓았다. 그는 1780년에 청나라로 가는 사절단과 동행한후 4년간의 심혈을 기울여 장편려행기 《열하일기》를 집필하였다. 《열하일기》는 려행과정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묘사대상과 창작의도에 따라 《수레의 제도》와 같은 정론, 《일신수필》의 여러 장들과 같은 수필, 《허생전》, 《범의 꾸중》과 같은 소설, 《피서록》과 같은 종전의 시화 등 각이한 형태의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대서사시적화폭의 장편려행기이다. 그는 1801년에 있은 《신유사옥》을 계기로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저술과 료양으로 날을 보내다가 1805년 12월 10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집인 《연암집》(전6권)에는 《열하일기》, 《과농소초》와 같은 독자적인 체계의 저술외에도 시 42수와 전, 론, 의, 서(긴편지), 기, 소(상소문) 등 여러가지 한문체형식의 산문작품을 합하여 근 270편이 올라있다. 박연암의 사회개혁리론에는 사회계급적으로 볼때 일련의 제한성들을 가지고있으나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것이라고 볼수 있으며 그의 사상과 문학은 열렬한 애국주의와 나라를 좀 먹는 량반사대부들에 대한 증오, 당대 봉건사회현실에 대한 비판, 뛰여난 문학적재능으로 하여 우리 인민의 귀중한 유산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