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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24 11:10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음악 (1)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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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음악은 14세기말부터 19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에 창조된 음악을 말한다. 오랜 력사를 가지고 계승발전하여온 민족음악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그 종류와 형식이 다양해지고 민족성이 강해졌을뿐아니라 지방적특색도 뚜렷해졌다. 조선봉건왕조시기 민족음악발전에서 중요한것은 근로대중의 생활속에서 민속음악이 발전한것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는 인민대중의 생활감정을 생동하고 진실하게 반영한 민속가요들이 수많이 창조보급된 시기이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노래를 즐겨불렀으며 그 과정에 애국적이며 민족성이 강한 우수한 노래유산들을 수많이 창조하여 전하여왔다. 이 시기에는 앞선 시기의 가요유산들을 토대로 하여 인민적인 민요들이 더욱 많이 창조되고 그에 토대하여 민족음악전반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였다. 인민들의 생활에서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민요들이 널리 불리워지고 보급되였으며 지방적특색이 뚜렷해졌다. 이 시기 인민들속에서는 로동생활을 주제로 한 민요들이 널리 불리워졌다. 인민들은 하루로동을 노래로 시작하고 노래를 부르며 생산성과를 높여나갔으며 노래로 피로를 가시고 작업을 마무리하군 하였다. 농업과 관련한 민요만 하여도 영농공정에 따라 《씨뿌리는 소리》, 《모내는 소리》, 《김매는 소리》 등으로 다양하였는데 그 곡들은 대단히 흥겹고 구성지였다. 농업로동뿐아니라 어업, 림업, 토목을 비롯한 여러가지 로동생활속에서도 민요들이 불리워졌으며 어업로동민요도 대단히 많았다. 이 시기 세태생활을 반영한 민요들이 수많이 불리워졌다. 자식들에 대한 부모들의 애정이 담겨진 《자장가》, 남녀간의 사랑을 반영한 《아리랑》, 민속명절의 흥취속에서 흘러나온 《돈돌라리》, 《그네뛰기》 등과 같은 세태민요들은 인민들의 정서생활을 풍부하게 하고 생활을 즐겁게 하였다. 인민들속에서 많이 불리워진 민요로는 반침략반봉건투쟁을 내용으로 한 노래들도 있다. 임진조국전쟁을 계기로 인민들의 애국심을 반영한 《연줄가》, 《쾌지나 칭칭 나네》, 《강강수월래》와 같은 민요들이 불리워졌으며 반봉건투쟁을 내용으로 한 노래들도 있었다. 인민들속에서 널리 불리워진 민요들가운데는 불합리하고 모순에 찬 봉건사회의 현실과 봉건통치배들의 알륵과 부패타락상을 폭로규탄한 참요들도 많았는데 그 내용과 형식은 앞선 시기의 참요들에 비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창작보급된 참요로서는 통치배들속에서 벌어진 권력다툼을 풍자한 《남산요》, 봉건정부의 사대매국적인 처사를 풍자한 《구맥요》 등 수십여편이 있었다. 이렇게 조선봉건왕조시기 인민들속에서는 다양한 생활과 정서를 반영한 민요들이 수많이 불리워졌는데 민요는 지방적특징을 강하게 나타내면서 발전하였다. 평안도민요로는 《수심가》가 유명하였고 함경도에서는 주로 《돈돌라리》가 성행하였으며 경기도지방에서는 《권주가》, 남부지방에서는 《륙자배기》가 널리 불리워졌다. 또한 조선봉건왕조 후반기에 민요의 발전에 토대하여 민간예술인들의 노래형상수준도 높아짐으로써 민속가요가 한층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이르러 각지의 소리광대들과 사당패의 공연활동이 더욱 활발해졌다. 각지 소리광대들에 의하여 불리워진 민간의 노래들을 통털어 잡가라고 하였다. 조선봉건왕조 후반기 평양, 한성을 비롯한 큰 도시들은 민간예술인들의 예술활동무대로 되였는데 그들은 《농부가》, 《방아타령》, 《양산도》, 《도라지타령》, 《매화타령》과 같은 민요들을 재치있고 흥겹게 불러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그들의 노래는 인민들이 좋아하는 민요풍의 선률들을 강한 리듬적억양을 살린 장단가락에 맞추어 노래하였기때문에 누구나 좋아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사당패에 의하여 《사거리》도 공연되였다. 사당패는 각지를 류랑하면서 예술공연을 한 민간예술인집단이였는데 북, 징, 장고와 같은 타악기와 피리, 저대, 새납과 같은 관악기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거사들과 춤을 추는 사당으로 구성되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