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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10 14:54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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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첫 봉건국가였던 고구려에서는 선진적인 사회경제제도에 기초하여 생산력이 빨리 발전함에 따라 기술분야에서도 많은 전진이 이룩되였다. 그가운데서 제철제강기술과 금속가공기술이 매우 발전하였다. 고구려에서는 다른 나라에 철을 수출할 정도로 많은 철제품들을 생산하였다. 여러 유적들과 유물들을 통하여 고구려는 초기부터 1 540℃의 높은 온도에서 완전용융상태의 강철을 얻어냈다는것을 알수 있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세계적으로도 고온야금법에 의한 주강생산발상지의 하나라는것을 말해준다. 유럽에서 고온야금법에 의한 제철제강법이 개발된것은 13~14세기였다고 한다. 금속가공기술의 우수성은 복잡한 모양의 정밀주조품들과 여러가지 도구로 금속표면에 조각을 하는 조금기술, 천수백년동안 땅속에 파묻혀있어도 본래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높은 도금기술이 적용된 여러가지 공예품들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압연하기 헐치 않은 강철도 능숙하게 압연하였는데 2㎜의 두께로 압연한 강철패쪽으로 철갑옷과 투구를 대량적으로 만들어 사람은 물론 말까지도 입히였다. 기마무사와 말이 철갑옷으로 완전무장한 기병을 《철기》라고 불렀다. 고구려는 246년에 있은 반침략투쟁에 무려 5 000기에 달하는 철기를 동원하였다. 오늘날에도 쉽지 않은 두가지 금속을 맞붙이는 기술을 고구려사람들은 벌써 천수백년전에 그 기술을 터득하고 화살촉제작 등에 활용하였다. 다음으로 고구려에서는 건축기술도 높은 수준에서 발전하였다. 그것은 왕궁, 사찰, 성곽, 다리, 무덤 등 여러 건축유적들을 통하여 엿볼수 있다. 안학궁과 대동강고구려나무다리는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목조건축기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민족문화유산이다. 5~6세기 고구려왕궁인 안학궁은 총부지면적 약 38만㎡, 총건평 3만 1 458㎡나 되며 세계적으로도 큰 목조건물인 중궁(길이 87m)을 비롯하여 덩지큰 건축물들로 이루어져있었다. 길이 약 375m, 너비 약 9m나 되였던 대동강고구려나무다리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뿐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가장 오래고 큰 다리중의 하나이다. 다리골조로 대부분 길이 8~10m, 너비 38㎝, 두께 26㎝되는 굵은 나무각재를 사용하였는데 못이나 꺾쇠같은 쇠붙이를 전혀 쓰지 않고 크고작은 모든 이음새들을 사개물림하는 방법으로 든든하게 련결시켰다.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건축기술은 계단돌칸무덤들인 태왕릉(한변의 길이 63m, 7단), 장군무덤(한변의 길이 34m, 높이 13m, 7단) 등과 나라를 보위하기 위하여 평지와 산지대에 쌓은 1 000개이상에 달하는 성곽들을 통하여서도 알수 있다. 다음으로 고구려에서는 방직 및 염색기술도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였다. 평양시 대성산일대에서는 실오리가 고르롭고 천의 평활도가 높은 누에고치실로 짠 천쪼각이, 중국의 집안에서는 꽃무늬를 놓은 매우 정교한 비단쪼각이 발견되였다. 이것은 당시 고구려의 천짜기기술수준이 얼마나 높은 지경에 있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고구려사람들은 여러가지 우수한 방법으로 천에 물감을 들이거나 무늬를 놓아 옷을 민족적미감에 맞게 해입고다니였다. 귀족들뿐만아니라 평민들도 여러가지 색갈과 문양의 옷을 입고있는것을 형상한 무덤벽화들을 통하여 고구려의 발전된 염색기술을 잘 알수 있다. 이밖에도 요업기술, 무기제작기술, 항해기술을 비롯하여 다른 많은 기술부문들도 당시로서는 높은 발전수준에 있었다. 고구려의 발전된 기술은 백제, 신라를 비롯한 삼국시기 동족의 나라들과 주변나라들의 기술발전에 이바지하였으며 그 영향은 후세시기에도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