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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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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9 14:58
중세 말기 이름난 수공업 및 상업도시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78  
중세 말기에 우리 나라에서 여러가지 수공업이 급속히 발전하고 이 부문에서 자본주의적관계가 발생, 발전하였다. 특히 전통적수공업부문의 하나인 놋그릇(유기)제조업에서 공장제수공업이 발전하였으며 그 명산지들이 늘어났다.
즉 이전에는 개성, 진주, 안성(경기도) 등 몇개 고을만이 놋그릇명산지였으나 19세기에 들어와 정주(평안북도), 재령(황해남도), 함흥(함경남도), 구례(전라남도)를 비롯한 새로운 명산지들이 형성되였다. 그가운데서도 정주 청정동(납청)이 유명하였다. 이곳에서는 대야, 양푼, 바리 등 그릇과 숟가락, 대통 등 놋제품을 많이 생산하였는데 놋그릇은 주로 단조(압연)하여 만들었으나 주물하여 만들기도 하였다.
이 시기 안성에서는 놋그릇을 비롯하여 숟가락과 저가락, 대통과 물부리 등 제품별 분업생산이 이루어지고있었다.
안성에서는 놋그릇수공업뿐아니라 철제품, 나무제품, 가죽제품과 갓, 망건 등을 만드는 수공업도 발전하였는데 이러한 제품들은 역시 전국적으로 가장 큰 장시의 하나인 안성읍내장을 통하여 각지에 널리 류통되였다.
이와 같이 중세 말기에 행정중심지의 하나였던 안성과 신흥수공업 또는 상업중심지였던 정주 납청, 박천 진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수공업, 상업도시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