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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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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9 14:54
황진이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83  
황진이는 16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녀류시인이다. 별명은 진랑이고 호는 명월이라고 하였는데 대체로 기생살이와 관련되여있는 기명으로 알려져있다.
개성에서 서민의 딸로 태여났다.
황진이는 용모가 아름답고 성격이 활달하면서도 단정하였을뿐아니라 남달리 총명하였으며 특히 시, 서예, 음률에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있어 당대에 으뜸가는 녀류시인, 예술가로 알려졌다.
그는 신분이 천한탓에 비록 기생살이를 하였으나 권력이나 재물에 유혹되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천대하고 멸시하는 량반사회에 재능으로 도전하면서 도고한 자세로 자신을 지켜갔다. 자존심이 강하였던 그는 고루하고 위선적인 량반관료들과 사대부들을 경멸하고 조소하였으며 자신을 당대의 이름난 철학가 화담 서경덕(1489년-1546년), 개성의 명승 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3절로 자부하였다.
그는 뛰여난 예술적재능과 강직한 생활신조로 하여 많은 일화들을 남기였다.
그의 시작품들은 시적형상의 생동성과 참신성, 정서의 섬세성과 진실성으로 하여 당대에는 물론 이후시기에도 광범한 계층들속에서 애송되였다.
국문시가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있었던 황진이는 곡절많은 한생에 적지 않은 시조작품들을 창작한듯 하나 대부분이 잃어졌다.
《해동가요》, 《청구영언》, 《가곡원류》 등 력대 시조집들에 《내 언제 신이 없어…》, 《청산리 벽계수야…》,《청산은 내 뜻이요…》를 비롯하여 6편의 시조가 실려 전해지고있다.
황진이의 시조들은 당시 량반유학자들이 많은 경우 유교적교리의 직설적인 해설에 치우치고 인간정서의 자유로운 토로를 억제하던것과는 달리 앙양된 사랑의 정서를 솔직하고 선명하게 표현하고있으며 그러한 심리묘사의 섬세성과 참신하고 세련된 시형상의 창조로써 17세기 이후에 대두한 서민문학의 선구자적작품으로 되였다.
특히 의성의태어 및 비유의 재치있는 구사는 단시로서의 시조의 제한된 시어속에 인간감정의 복잡하고 미묘한 파동까지를 진실하게 전달하는 귀중한 경험을 남겨주었다.
황진이는 시조외에 《반달》, 《꿈》, 《소판서를 보내며》, 《박연폭포》 등 한시를 남기였는데 이 작품들 또한 그의 사람됨과 뛰여난 시적재능을 보여주었다. 시 《박연폭포》는 온 골짜기를 울리며 쏟아져내리는 폭포의 물줄기와 푸른물이 소용돌이치는 룡소, 칠색무지개를 수놓으며 구슬같이 흩어지는 물방울에 이르기까지 그 아름다움과 장쾌함을 능숙한 비유의 수법으로 선명하게 그려낸것으로 하여 그의 창작적열정과 기교를 엿볼수 있게 하는 대표적작품의 하나로 평가되고있다.
황진이의 시가들은 신의와 절개를 중히 여기는 녀인들의 깊은 내면세계와 인정을 그리워하는 애틋한 심정을 정서적으로 감동깊이 그려내는것이 특징적이며 이러한 특성으로 하여 중세시가문학유산을 이채롭게 하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