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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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4 16:32
음악가 홍란파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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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란파(작곡가)는 경기도 수원군 남양리에서 출생하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정악전습소에 입학하여 성악과 바이올린을 배운 후 주체3(1914)년부터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 후대교육에 힘썼다.
주체7년에 외국으로 건너가 음악공부를 계속하려 하였으나 3. 1인민봉기에 관여하였다는 리유로 음악수업을 더하지 못하고 고향에 돌아와 창작을 하였다.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홍란파의 음악활동은 여러 분야에 걸쳐 본격적으로 전개되였다.
그는 창작을 하는 한편 아직 미개척분야였던 평론을 적지 않게 하였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여러 신문, 잡지들을 통하여 리론활동을 벌리였으며 《음악만필》을 편집출판하여 음악계몽사업에 도움을 주었다.
또한 잡지 《음악계》를 출판하였고 기악연주활동을 널리 진행하였으며 교육사업에도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음악활동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은 창작이였다.
그의 창작활동은 주로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초에 이르는 기간에 진행되였는데 이 시기 수십편의 서정가요와 여러편의 합창곡, 기악곡, 100여편의 동요곡들을 썼다. 《홍란파동요 100곡집》은 1930년대 중엽에 출판된것이다.
그는 대중적인 음악형식을 통하여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애국적감정을 반영하려는데로부터 주로 성악곡을 많이 창작하였다.
특히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덜 미치고있는 아동가요를 통하여 인민들의 민족적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부터 아동가요창작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의 노래들은 대부분이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의 현실에 대한 슬픈 감정과 자기 고향에 대한 그리움, 어린시절에 대한 추억 등을 주제로 하고있다.
또한 음악형상도 애수적이고 비통한 정서로 일관되여있는것이 일반적특징으로 되고있다.
자신의 세계관의 제한성으로 하여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킬만 한 주제를 선택하지 못하였으며 음악창작에서도 전투적이고 호소성이 높은 형상을 창조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민족적정서가 짙고 인민들의 애국적인 사상감정을 소박하게 체현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그의 작품은 당시의 청소년학생들과 인민들을 반일애국사상으로 불러일으키는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서는 주체9(1920)년에 창작한 《봉선화》와 1920년대말에 창작한 《성불사의 밤》, 《옛 동산에 올라》 등을 들수 있다.
그는 창작과 연주, 교육과 평론 등 여러가지 음악활동을 진행함으로써 현대적인 조선의 음악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한 선구자의 한사람으로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