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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4 16:17
고구려의 정치구조에 대하여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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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B.C. 277년에 시조 동명왕(고주몽)에 의해 세워져 A.D. 668년까지 근 1 000년간 존재한 우리 나라의 첫 봉건국가이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봉건국가의 체모에 맞는 정연한 국가정치구조를 갖추고 나라의 모든 지역과 인민들에 대한 정치적지배를 실현하였다.
고구려의 정치구조에서 특징적인것은 국가통치체계와 질서가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봉건적중앙집권제에 기초하여 매우 조밀하게 째여져있었다는것이다.
국왕(황제)은 전제군주로서 제후왕들과 중앙과 지방의 각급 관료들우에 군림하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였으며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권을 더욱 강화하고 국왕중심의 국가통치체계와 질서를 유지공고화하기 위한데 있었다.
고구려의 중앙집권체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관직제도를 보면 전기에는 대보, 좌보, 우보와 국상, 중외대부, 대신, 상(재상), 평자, 부장 등이 있었으며 후기에는 막리지, 대막리지, 태대막리지, 대신, 태학박사, 국자박사, 대학박사, 사인, 통사, 전객(전서객) 등이 있었다. 이밖에 국왕의 중앙집권적, 전제적인 권능을 높이기 위하여 봉건귀족들에게 일종의 명예벼슬칭호인 작위를 주는 봉작제도도 있었다.
고구려는 이미전부터 내려오던 귀족민주주의적합의기구인 제가평의회를 5명의 최고위급관료들이 나라의 중요정사를 토의하여 국왕의 결정을 받는 5관협의제로 개편함으로써 나라의 대내외문제들을 처리하는데서 봉건왕조의 전제권력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지배계급내부에서의 계층적차이를 나타내기 위한 관등급(벼슬등급)제도인 봉건적위계제도와 함께 실제적으로 직무가 없는 관료들에게 해당한 사회적대우를 해주는 제도인 문관계(산계)제도를 내오고 그것을 점차적으로 정비보강하여 국가통치체제를 더욱 완비하고 봉건세력의 특권적지반을 넓혀나갔다.
고구려의 지방통치체제 역시 광활한 령토와 주민들에 대한 정치적지배를 실현할수 있게 상당히 째여있었다.
고구려는 나라의 전지역에 대한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써 《성》, 《홀》, 《곡》, 《련》, 《가》, 《탄》 등으로 불리우는 지방행정단위들을 내오는 성읍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주, 군, 현, 진제도를 내오고 현아래에는 향, 부곡, 리, 촌 등 하부말단행정단위를 두었다.
그리고 이러한 행정단위들을 맡아보는 지방관리인 장관들을 통하여 국왕의 통치가 최하층 인민대중에게까지 실현되게 하였다.
고구려는 나라의 변방지역에 후국과 속국, 속령을 두었으며 정치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방의 중심지에 별도라고도 불리운 부수도를 둠으로써 지방에 대한 국왕의 중앙집권적통제와 지배를 강화하였다.
고구려의 봉건적통치체계와 질서는 가혹한 봉건법률과 군대에 의거하여 법적으로, 폭력적으로 철저히 안받침되여있었다.
고구려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봉건지배계급을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투쟁을 억누르고 봉건적통치질서를 유지공고화하기 위하여 각종 법규정들을 개정하거나 새로 만들어냈으며 그 대표적인것은 373년에 처음으로 발표한 《률령》을 들수 있다. 이것은 당시까지의 주요법령들을 종합체계화하여놓은 고구려봉건국가의 기본법전이였다. 봉건적의무병제와 상무기풍에 의해 군사제도가 발달한 고구려에는 중앙과 지방에 여러 군종과 병종에 해당하는 전문군사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봉건통치계급과 통치제도의 안정을 담보해주고있었다.
이처럼 고구려는 매우 정연한 정치구조를 가진 발전된 첫 봉건국가로서 동방의 천년강국으로 세계에 그 위용을 높이 떨치며 민족사를 빛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