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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02 16:07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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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녀성들은 옛날부터 수놓이를 많이 하여왔으며 수예품에는 슬기롭고 지혜로우며 외유내강한 조선녀성들의 아름다운 품성이 반영되여있다.》 예로부터 우리 조선녀성들은 다양한 색실과 여러가지 천, 바늘을 리용하여 자기들의 지혜와 재능을 보여주는 자수들을 수많이 창작하였다. 조선수예는 우리 녀성들이 생활을 아름답고 고상하게 꾸려나가려는 생활적요구와 창조적로동과정에 발생발전하여왔다. 고대국가들가운데서 비단생산이 가장 발전한 고조선의 수도였던 평양지방에서 최초의 수예유물이 발견되면서 조선수예가 세계 5대문명의 하나인 《대동강문화》전통을 형성한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였다는것이 확증되였다. 평양시 락랑구역 석암의 219호무덤, 205호무덤에서 발굴된 비단천에 바탕천색과 구별되는 색실로 수놓은 천쪼박유적은 고대시기에 이미 조선수예의 시원이 열렸다는것을 말해준다. 고대중국의 기록에도 우리 나라의 수예가 세계적으로도 일찍 발전하였다고 밝혀져있다. 삼국시기에는 고대시기에 비하여 수예품의 종류가 늘어나고 제작방법에서 전진이 있은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세나라시기 조선수예는 회화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이 시기에 벌써 민족적인 체모를 갖추게 되였으며 고구려를 중심으로 예술적발전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전해지고있는 고구려수예유물들을 보면 형상기법, 수예재료와 질에 이르기까지 동방의 그 어느 나라 수예유물보다 훨씬 우월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고구려시기에 창조된 수예 《천수국수장》(7세기초)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의 수예도 삼국시기의 우수한 기술과 경험들을 물려받았으며 더한층 발전된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그 가운데는 바늘과 가위를 비롯한 수예도구들도 있다. 고려시기 우리 나라 미술발전에서는 수공예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다. 고려의 수예품들은 이웃나라들에도 널리 알려져 무역의 필수항목으로 되였으며 고려의 발전상을 널리 알리는데 이바지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우리 나라 녀성들은 당대 시대의 온갖 봉건적 및 종교적지배속에서도 진보적이며 인민적인 지향과 념원을 반영한 민족수예를 발전시켜왔다. 이 시기 수예발전의 특징은 수예의 종류가 세분화되고 형상수법이 풍부해진것이다. 오늘 주체적이며 민족적인 수예는 우리 인민들의 사회주의적생활양식과 미감에 맞게 발전하여 근로자들의 정서생활을 더욱 풍만하게 하여주고있으며 해외동포들과 외국인들속에서 절찬을 받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