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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는 조선인민의 고유한 민족음식이며 대표적인 부식물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 음식들가운데서 가장 특색있는 료리의 하나는 김치이고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도 김치이다.
김치라는 말은 침채 또는 침장 즉 잠그어서 저장한다는데로부터 유래되였다.
침채라는 말은 남새(채)를 소금물에 잠근다는 뜻이다.
침채라는 말이 오래동안 우리 인민들속에서 전해 내려 오면서 침은 《김》으로 채는 《치》로 이전되여 김치라는 말로 굳어 졌다.
우리 나라에서 김치를 담그기 시작한 력사는 대단히 오래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고구려의 시조 고주몽이 비류수강가에서 남새잎이 떠내려 오는것을 보고 그 웃쪽에 사람이 사는줄 알고 사냥을 하면서 찾아 올라 갔다고 하였는데 이 남새잎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남새인지는 자세치 않으나 이것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이 일찍부터 남새를 식생활에 리용하였다는것만은 명백히 알수 있다.
기록에 보이는 고구려시기의 남새로는 부루와 무우 등이 있다.
무우에 대하여서는 고구려사람들이 된장, 다시마와 함께 주요음식의 하나로 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알수 있다.
또한 고구려에서 식품의 저장 및 양조기술이 발전하고 당시 술, 간장, 된장, 젓갈등이 리용된 제반사실로 미루어 볼때 일찍부터 남새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공할줄 알았고 발효식품과 함께 소금에 절여서 만든 저장식품들이 널리 리용되고 있었음을 알수 있다.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를 거쳐 고려시기에는 간장, 된장, 김치등을 만들고 관리하는 기구로서 사온서, 어장고, 침장고가 있었으며 리규보의 시《가포륙영 (채마밭에서)》에는 무우, 오이, 가지, 파 등의 재배를 읊은 구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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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여두면 여름에도 좋은 반찬이요
김장담가 온 겨우내 먹을수도 있구나
( 《동국리상국후집》권 4 고률시 )
시에서 명백히 한 바와 같이 고려때 무우는 소금에 절여 독에 담가 두었다가 겨울과 이른 봄에 남새가 귀할 때 먹을수 있는것이였다.
한편 고려사람들이 무우로 김장을 담가 겨울동안의 반량식으로 하였다는것은 무우를 절여서 만든 무우짠지나 동치미였을것이다.
김치담그는 방법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크게 발전하였다.
《림원십륙지》, 《산림경제》, 《규합총서》를 비롯한 옛 책들에서는 18~29세기경의 김치의 발전수준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선 김치담그는 방법이 다양하고 그 종류가 많아 졌다.
고려시기까지는 절이는 김치를 만들었지만 고추와 배추가 재배된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서는 고추양념을 쓰고 배추를 재료로 하면서 각이한 방법으로 김치를 담그었다.
지방별에 따라 담그는 방법과 솜씨가 달랐으므로 지방적특색을 띤 김치도 많이 만들어 졌다.
그리고 김치에 여러가지 재료들이 배합되기 때문에 그 맛이 독특하게 되였다.
김치를 담글 때 배추, 무우, 오이, 미나리, 쑥갓, 가지, 갓 등 신선한 남새와 함께 향긋한 산나물을 기본재료로 하면서 여기에 고추, 파, 마늘, 생강, 소금 등 조미료와 과일, 고기나 물고기 또는 젓갈 등을 배합하여 만들었기때문에 익는 과정에 각이한 재료의 맛들이 서로 잘 조화되여 시원하면서도 쩡한 맛, 향긋하면서도 상쾌한 맛, 달면서도 새큼한 맛 등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선조들은 우리 나라의 김치에 대하여 《1등료리》, 《반찬중의 왕》이라고까지 자랑하였다.
우리의 김치는 오늘에 와서 일본,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널리 퍼져 세계적인 음식으로까지 이름이 높아 졌다.
이와 같이 김치는 조선음식의 우월성을 보여 주는 고유한 음식문화유산의 하나로써 우리 민족의 크나큰 자랑으로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