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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1-05 10:39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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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석굴암은 8세기 중엽에 건설한 돌굴형식의 절간이다.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다. 다른 나라들의 자연석굴과는 달리 경주석굴암은 고구려의 돌칸흙 무덤건축형식을 본받아 산비탈을 파서 터를 닦고 깨돌로 방을 꾸리였으며 그우에 흙을 덮어 만들었다. 전설에는 신라의 대상벼슬을 하던 김대성이란 사람의 발기로 8세기 중엽에 불국사를 크게 고쳐지으면서 이 석굴암도 동시에 지은것으로 되여있다. 석굴암은 처음에 석불사라고 부르다가 지림사에 속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였다. 석굴암은 불교예술의 제약속에서도 자연과 건축, 건축과 조각, 조각호상간의 유기적통일과 형상적처리에서 높은 경지를 보여준 후기신라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석굴암의 평면은 장방형의 앞칸과 짧은 사이길, 그뒤의 둥근굴칸으로 되여있다. 직경이 7.2m인 둥근굴칸은 8각대좌우에 앉아 있는 중심부처를 가운데에 두고 벽면을 이루는 길이 2m이상의 15개 병풍돌에 새긴 조각과 병풍돌우의 10개의 감안에 있는 측근자들의 조각이 중심부처를 향하여 배치된 형식으로 되였다. 이 둥근굴칸의 천정은 반구형으로 5단 짜올렸는데 우의 세단에는 층마다 10개씩의 쐐기를 방사형으로 박아 구조적인 견고성을 보장하면서도 마치 해살이 퍼지는것과 같은 예술적효과를 거두고있다. 그우에 커다란 련꽃을 새긴 뚜껑돌을 덮었다. 벽면 병풍돌조각은 앞으로부터 오른쪽에는 제석천과 문수보살, 5개의 라한상들을, 왼쪽에는 범천과 보현보살, 5개의 라한상들을 각각 배치하고 부처의 바로 뒤에는 11면관음상을 돋을새김하여 배치하였다. 이 병풍돌들의 우에 있는 10개의 감안에는 앉은 자세로 각이한 생활세태적모습을 한 보살상조각들이 들어있다.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앞칸과 굴칸으로 들어가는 짧은 사이길은 부처세계를 지키는 4천왕상과 인왕상, 8부중상들을 새긴 면돌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굴칸입구에는 고구려쌍기둥무덤의 기둥을 련상케 하는 2개의 8각기둥이 서있다. 앞칸에는 동쪽벽과 두 옆벽에 8부중상이, 사이길이 있는 서쪽벽의 좌우에 인왕상이 배치되여있으며 사이길 두 벽면에는 4천왕상이 배치되여있다. 안칸과 사이길의 조각들은 안온하고 엄숙한 뒤방 분위기와는 달리 무섭게 형상되여 수호신으로서의 특징을 나타내고있으며 형상수준에서도 차이를 보이고있다. 둥근굴칸에서는 천불소탑과 인왕조각의 파편들이 발견되였다. 석굴암의 건축설계는 전적으로 굴칸가운데의 본존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전개된 이 40여개의 조각무리배치에 복종되면서 조각내용과 건축이 완전히 일치되여 하나의 조화된 통일체를 이루고있다. 석가여래타상 인체해부학적으로 거의 옳은 비례관계를 가지고 혹은 섬세하게 혹은 대담한 생략으로 완전돋을새김이나 반돋을새김, 혹은 낮은돋을새김으로 대상의 각이한 인상과 자세의 개성적특성을 잘 드러낸 40여개의 불상조각들은 하나하나가 걸작품들이다. 석굴암의 조각들에는 자연광선의 변화에 의한 효과와 보는 시점에 따르는 효과까지도 충분히 타산되여있다. 참으로 석굴암의 조각과 건축은 불교미술의 제한된 범위에서도 슬기로운 우리 선조들의 뛰여난 재능을 남김없이 보여준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