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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02 03:13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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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1912. 5. 29 평북 신의주~2002. 11. 15 서울. 체육인. 손기정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의 마라톤경기 ...1937년 3월 양정고등보통학교, 1940년 3월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했다.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좋아하여 점원, 인쇄공 일을 하면서도 달리기를 계속했으며, 16세에 일본 고학길에 올랐고 20세에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여 만학의 길을 걸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마라톤 선수생활을 시작하여 1935년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1차 예선대회에서 우승한 후, 같은 해 4월과 5월 서울에서 열린 국내 마라톤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그해 11월 일본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 대회 최종예선을 겸한 전(全)일본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여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대표선수로 선발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를 잘 견디어내 숱한 스포츠 일화를 남겼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 한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세계무대에 알려지지 않은 신인으로서 제10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대회 우승자인 아르헨티나의 자발라, 영국의 하퍼, 핀란드의 타미라 등 쟁쟁한 우승후보를 물리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대회의 마라톤경기 우승 부상품으로 청동 투구를 받았다. 2위를 차지한 영국의 하퍼는 레이스 도중 손기정에게 "서두르지 말라"는 충고를 보내주기도 하여 스포츠맨십의 귀감으로 전해졌다. 3위는 한국의 남승룡이 차지했다. 경기 후 한 기자가 반환점부터 그토록 스피드를 낸 이유를 묻자, "인간의 육체란 의지와 정신에 따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고 대답하여 그의 스포츠맨십은 후배선수들에게 교훈으로 남았다. 그러나 시상식 게양대에 일장기가 오르고 일본국가가 연주되자 우승자의 모습에는 치욕의 표정이 역력했다. 또 그는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출전했는데, 〈동아일보〉의 이길용 기자는 일장기를 없앤 사진을 실어 민족혼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는 "당시 한국인들이 개인적으로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했지요. 그러나 스포츠는 예외였습니다. 베를린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나는 '꼭 1등을 하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전세계인은 '손기정은 한국인임'을 알게 될 테니까요"라고 그때를 회고해 그의 애국심에 고취된 정신력을 엿볼 수 있게 했다. 1947년 선수생활을 마친 후 서윤복이 우승을 차지한 제51회 미국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감독으로 참가했고 1948년 제14회 런던 올림픽 대회 및 1952년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대회에 임원으로 참가하는 등 육상지도자로 후진양성에 힘썼다. 1951~55년 조선방직주식회사 상무이사, 1956~70년 서울제분주식회사 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1966년에는 제5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 한국선수단 단장으로 참가하여 한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하는 데 공헌했다. 1948년 새로 조직된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서 체육행정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1963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1966년 대한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 1970년 대한육상경기연맹 고문을 지냈으며, 1985년까지 대한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981년에는 평화통일자문위원회 위원, 서울 올림픽 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1981년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개최된 국제 올림픽 위원회 제84차 총회에서 서울 올림픽 대회 유치를 위한 교섭단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국제 스포츠 지도자들과의 긴밀한 접촉으로 대회를 유치하는 데 공헌했다. 1982년 마라톤 강화위원장을 지냈으며, 1992년 대한육상경기연맹 상임고문, 한국 올림픽 위원회 상임고문으로서 체육발전을 위해 힘썼다. 세계적인 체육인으로서 제20회 뮌헨 올림픽 대회 및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 등에 특별초청되기도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공로로 미국 헬무스 체육상을 아시아 지역 대표자격으로 수상했으며, 마라톤을 비롯한 국내 육상계 발전과 한국 체육 발전에 대한 공로로 1957년 대한민국 체육상, 1970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국제육상경기연맹의 공로상(1968) 및 특별상(1982), 일본 오시마 스포츠 문화상 등을 받았다. 자서전인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과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대회 우승 당시의 일화와 소감을 기록한 〈아 월계관에 눈물〉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