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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1-22 14:58
거세찬 반미폭풍을 일으킨 10월인민항쟁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0,104   추천 : 0  

남조선에서  미제의  군사적강점과  식민지통치를  배격하고  민족의  자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10월인민항쟁이 전개된 때로부터 64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고 산천은 변해도 그날의 항쟁용사들이 웨쳤던 반미자주화의 구호는 오늘도 우리 민족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주고있다.

1945년 9월 《해방자》의 탈을 쓰고 남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한 미제는 남조선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고 나아가 전조선을 타고앉을 야망밑에 애국적민주세력을 총칼로 탄압하며 식민지정책을 악랄하게 실시하였다.

극도의 정치적무권리와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는 미제의 야만적인 통치는 온 남녘인민들을 격분시켰으며 이것은 마침내 1946년 10월인민항쟁으로 폭발하였다.

미군정당국의  폭압중지와  생존권을  요구하여  총파업을  일으킨  철도로동자들의  뒤를 이어 10월 1일 대구의 수만명 로동자, 학생, 시민들은 시내 곳곳에서 대중적시위를 전개하였다.

미제침략군과 괴뢰무장경관대가 시위군중을 향해 사격하며 무자비한 탄압에 나서자 격분한 인민들은 《미국의 식민지예속화정책 반대!》, 《미군정을 타도하라!》, 《민주개혁을 실시하라!》 등의 구호들을 웨치며 폭동에로 넘어가 시내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대구에서의 항쟁의 불길은 삽시에 경상남북도에로 번져갔다.

영천, 경산, 례천, 영주, 마산 등지의 로동자, 청년학생들, 부녀자들을 비롯한 각계층 주민들은 이르는 곳마다에서 친미악질분자들을 처단하고 통치기관들과 반동기관들을 짓부셔버렸다.

10월 중순부터 항쟁은 서울과 경기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등 온 남녘땅에로 급속히 파급되여 전인민적인 반미투쟁으로 확대되였다.

미제와 그 주구들의 야수적탄압에도 불구하고 11월까지 계속된 항쟁에 남조선의 73개 시, 군의 애국적인민 약 230만명이 참가한 사실만으로도 당시 투쟁의 규모를 잘 알수 있다.

죽을지언정 다시는 노예로 살지 않으려는 기상과 굳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10월인민항쟁은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사의 한페지를 빛나게 장식하였으며 그 이후 온 남녘겨레를 반미결사항전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며 거세찬 반미폭풍을 안아오게 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그날의 항쟁용사들의 정신을 이어 제주도인민봉기, 광주인민봉기, 미국문화원방화 및 점거투쟁 등을 줄기차게 벌려나가며 보다 거세찬 반미열풍을 일으켰다.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할데 대한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 이후 남조선인민들의 반미투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면서 온 남녘땅을 더욱 거세차게 휩쓸고있다.

이 나날 침략과 지배기구의 총본산인 미국대사관에 대한 기습시위가 빈번히 일어나고 맥아더동상철거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을 비롯한 반미투쟁들이 곳곳에서 전개되였다.

청년학생들은 남조선강점 미군사령부가 도사린 룡산미군기지안에까지 뚫고들어가 강점자들을 전률케 하였으며 미제2사단기지를 비롯한 미제의 요충지들, 침략전쟁연습장들도 남조선인민들의 주요반미투쟁장소로 되였다.

각계층 단체들은 123차에 걸쳐 진행해온 미국대사관앞에서의 반미련대집회를 지난 1월부터 자주통일평화행동으로 명칭을 바꾸어 투쟁을 더욱 확대시키고있으며 최근에는 《천안》호사건을 구실로 북침전쟁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고있는 미제의 죄행을 폭로단죄하는 투쟁을 줄기차게 벌리고있다.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의 통일을 기어이 이룩하고야말 온 민족의  억센 신념이 있는 한 64년전 10월의 그 나날 항쟁용사들이 지녔던  반미자주화, 통일의 념원은 반드시 성취되고야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