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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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0 03:38
도문시 “눈물 젖은 두만강” 산실 “만춘려관” 복원
 글쓴이 :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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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은 노래 “눈물 젖은 두만강”의 산실 “만춘려관”이 복원된다.

  6일 도문시에 따르면 1930년대 두만강변에 세워져 운영됐던 만춘려관 복원에 나서 이달말 완공한 뒤 다음달 8일 준공식을 할 계획이다.
  도문과 조선 남양을 잇는 두만강철교 상류에 위치한 두만강나루터부근에 세워지는 만춘려관은 “ㄴ”자 형태에 붉은색 벽돌을 쌓고 양철지붕을 얹어 1930년대 만춘려관모습을 재현한다. 도문시는 만춘려관 복원을 위해 지난해 1년 동안 당시 이 려관에서 일했던 종업원 등 각계의 고증을 거쳐 모형도를 완성하고 연변과학기술대학에 의뢰, 설계를 마쳤으며 올해 들어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복원되는 만춘려관은 원형에 가깝지만 원래터에 이미 건축물이 들어서있어 그 부근에 건립되며 규모도 136㎡였던 옛 만춘려관보다는 다소 축소된 100㎡로 세워진다.

  도문시 향토사학자들은 객실 14개가 있었던 만춘려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도문일대 최대의 려관으로 독립운동이나 무역을 위해 두만강을 건너 간도를 오가던 조선인들이 즐겨 묵었으며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가 탄생한 산실로 보고있다.

  한국 대중가요 연구가들에 따르면 1935년 간도순회공연에 나섰던 류랑극단 “예원좌(藝苑座)”가 만춘려관에 투숙했는데 이 극단의 지휘자 겸 작곡가였던 이시후씨가 밤새 흐느끼는 녀인의 울음을 듣고 이튿날 려관주인을 통해 사연을 물었다고 한다. 이 녀인이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을 수소문해 조선에서 두만강까지 찾아왔으나 이미 일본군에 의해 남편이 처형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밤새워 구슬피 울었다는걸 알게 된 이씨는 밤을 새워 일제 강점기 두만강류역에 서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담아 눈물젖은 두만강을 작사 작곡 했다고 전한다.

  예원좌의 소녀가수 장성월이 간도순회공연에서 이 노래를 불러 관객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후에 서울로 돌아가 작곡가 김용호가 2, 3절의 노래말을 짓고 1938년 고 김정구(1916-1998년)씨가 음반을 취입했다. 음반 발매직후 조선총독부가 민족의식을 고취한다는 리유로 판매금지처분을 내렸던 이 노래는 해방과 함께 널리 불리면서 70여년간 변함없는 사랑을 받는 한국국민 및 한민족의 애창곡으로 자리잡았다.

  두만강 관광자원 개발에 나선 도문시는 조선과 중국을 오가던 나루배가 정박했던 두만강나루터도 복원하고있으며 나루터를 소개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료녕문보에서 발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