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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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4-03 11:46
[회원들의 글] 음력설을 앞두고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426   추천 : 0  

 

심양시 지부장 권헌

 

음력설을 며칠 앞두고 심양시지부 렴순자, 류춘화, 김경희 등 일군들과 핵심공민들은 심양시 년례행사인 로공민들 병문안 겸 설인사 길에 나섰다.

 

심양시 우홍구 대흥가도 신흥마을에 조선족로인들의 로후생활을 보살펴주는 은혜양로원이 있다.

 

대흥가도를 전에는 대흥조선족향이라고 하였는데 심양시 서쪽교구에 위치하고있다. 향  아래에 13개 마을중에서 조선족들만 살고있는 마을은 유독 신흥마을뿐이다.

 

심양시 조선족 제3중학교와 오가황 조선족소학교가  대흥향에 있다. 우리는 명령가에서 약 12키로 떨어져있는 신흥마을 은혜양로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304국도여서 차량이 많아도 그래도 씽씽 달려 은혜양로원의 대문에 도착하니 웬 로인이 우리를 반기며 인사한다. 나도 답례인사하면서 의혹스러웠다.《아니. 아바이가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우리 공민 송병헌로인이였다. 나는 송병헌공민이 양로원에서 생활하고있는줄은 몰랐다. 우리가 현관에 들어서니 양로원 김기철원장이 장영옥공민과 함께 우리를 맞이하였다. 원장이 우리 일행을 사무실로 안내하면서《이 바쁜 대목에 찾아주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지난시기 해오던 사업과 양로원을 꾸리면서 기울인 애로들을 이야기하면서 송병헌공민이 조선전쟁참전로병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못받는것을 알고 유관부문을 찾아다니며 애를 쓴 사연들을 이야기하였다.

 

나도 조선공민이여서 사회보장을 못받고있는것을 알게된 원장선생은 왜 상급에 찾아가지 않는가고 의심스레 묻는다. 나는 정년퇴직수속을 하려고 해당부문에 가서 신청했지만 공상은행카드를 개설해주지 않아서 지금까지 정년퇴직수속을 하지못하였다고 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황고구은행, 심양시은행을 여러차례 찾아가도 조선공민이라고 끝내 해결받지 못한 안타까운 심정을 그대로 토로하니 원장선생은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근 60년을 상주해오면서 외국인영구거류신분증까지 발급받았지만  유엔의  대조선제재로 인하여 일반백성들까지 억울하게 고통받는것에 동정해주었다. 동정이 필요없지만 그래도 고마웠다. 한담중에서 김원장이 조선족사회와 조선에도 관심이 있기에 가지고 간 《백두-한나》잡지를 주니 반갑다고 하여 앞으로도 보내주기로 하였다......

 

 우리가 장영옥공민의 방에 들어서니 여러 사람들이 한창 이야기중이다. 장영옥, 렴순자공민은 중국인민지원군을 따라 중국에 온 공민들로서 흘러간 세월속의 처녀시절과 지원군남편을 만나던 일들, 중국말과 글을 몰라 애먹던 일들을 이야기하는데 송병헌아바이가 김원장이 양로원로인들을  잘 보살펴주는 고마운 분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영옥공민은 지난해 다리를 다쳐 병원에서 출원하자 마자 곧바로 양로원으로 왔는데 지금은 퍽 낳아졌다고 하면서 이렇게 찾아와 주어서 너무도 반갑고 고맙다며 인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우리 집사람의 병이 좀 어떤가고 묻기에 지금도 바깥출입을 못한다고 하였더니 많이 걱정해주었다. 또한 송병헌로인은 반년전에 부인이 세상을 떠난후 여기로  왔다면서 그새 련계가 안된 원인을 말하였다. 부인이 병으로 앓아서 살기가 너무 힘든데다가 중국사람들처럼 최저생활보장금과 같은 생활래원이 없어 국적을 바꿀 생각까지 하였다면서 정말 지부장을 볼 면목이 없다고 하였다. 송병헌아바이는 올해 87세로 나이보다 건강하여 보이는데 순직하고 정직한분이다. 지원군전사로 조국해방전쟁에서 포병으로 싸웠는데 전투에서 파편에 다리를 다쳤다고 하면서 후에 조선인민군으로 개편되였다고 한다. 내가 조선족인물들을 소개한 책에서 아바이가 군공메달을 달고 찍은 독사진을 본일을 말하니 송병헌로인은 싱글벙글 웃더니 일전에 시조선족기업가협회에서 위문하러 왔는데 그날도 군공메달을 달고 사진을 여러번 찍었다고 자랑하였다. 그날 송병헌아바이가 기뻐하던 모습을 지켜보았던 장영옥공민이 “맞아요, 그날 정말 굉장했어요” 하는 말에 다들 웃었다...

 

김원장이 음료수와 과일을 든 복무원들과 함께 장영옥공민의 호실로 들어왔다.  우리도 가지고온 과일들을 복무원들에게 맛보라고 주면서 양로원 로인들에게도 나누어 주라고 부탁하였다.  

 

우리가 한참 이야기하고 다른 공민들의 집들도 가봐야 한다고 하니 김원장은 이렇게 모처럼 왔는데 은혜로양원을 한번 돌아보자고 하였다.

 

은혜양로원은 모두 2층으로 된 건물안에 방 50칸이 정갈하게 꾸려져있었고 위생관리가 잘 되였다. 깨끗하고 우리 민족습관에 잘 맞는 형식을 갖추고있어 편안하고 안정된 로후생활을 누려주려는 원장의 마음을 잘 알수가 있었다.

 

우리 일행은 김원장과 장영옥공민, 송병헌공민들과 작별하면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였다. 그러자 장영옥, 송병헌로인들이 눈물이 글썽한 모습이 보인다. 양로원생활을 하는 여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김원장과  떠나는 우리에게 인사하는데 어딘지 외롭고 쓸쓸한 감이 든다. 부모들이 고생을 하면서 자식 네댓을 키워도 자식들이 어머니, 아버지 한분을 모시지 못하는 이 가슴아픈 현실에서 부모의 은혜도 모르고 저만 잘 살겠다고 뿔뿔히 외국으로 가는 지금에 그래도 남의 부모를 돌봐주는 고마운 조선족양로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앞으로 자주 찾아오겠다고 여러분들의 건강을 축복하면서 양로원을 떠났다. 차에 올라 나는 조용히 생각하였다.

 

왜 우리 조선민족이 이렇게 되는지. 부모를 공대하는 미풍량속은 어디로 갔는지. 자기를 낳고 키워준 부모에게 감사를 모르는 사람이 인정이 있을가 라고……